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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남성 아카펠라로 읽어낸 ‘지중해의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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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18 23:01:38 수정 : 2021-06-18 23: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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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고향’ 코르시카인들
고단한 역사·험한 바다와 싸워
민요 중 무반주 남성합창 많아
단결력 노래로 표현 ‘삶의 유산’

이국적인 분위기, 낯설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음악들. 그 가운데에도 포르투갈 파두나 아르헨티나의 탱고 등은 모두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삶의 애환을 음악에 담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조심스레 코르시카라는 지중해의 섬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코르시카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이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커다란 도시가 아니다. 하지만 지중해를 장악했던 사람들이 한 번쯤은 꼭 거쳐 가면서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남긴 중요한 섬이기도 하다. 그리스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다. 켈트 사람들과 무어인들 역시 코르시카에 족적을 남겼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18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되는 바람에, 지금은 이곳으로 가려면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니스에서 비행기 또는 배로 이동한다. 이곳 현지인이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자신들만의 언어로 ‘고르시카’라고 부르는 반면 정작 프랑스 사람은 ‘코르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코르시카는 역사적으로 지중해에서 끊임없이 벌어졌던 힘의 원리에 희생된 슬픈 역사로 도배돼 있다. 덕분에 이들의 음악에는 힘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감성과 음악적 전통이 있다. 여기에 남부 유럽 국가나 민족이 공통적으로 갖는 낙천성, 그리고 유럽 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가톨릭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코르시카가 독립국가로 인정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코르시카에도 프랑스는 물론 유럽 사람이 인정하는 비공식 국기와 국가가 있다. 코르시카 국기에는 까만 곱슬머리에 흰 머리띠를 두른 젊은 청년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이 청년의 모습은 분명히 전형적인 유럽 백인의 얼굴이 아니다. 흡사 오텔로를 연상시키는 무어인을 닮았고, 강인하면서도 정이 많은 젊은이의 모습이 코르시카의 비공식 국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코르시카 사람의 음악에서 유심히 볼 부분은, 이들이 세대를 거쳐 만들어낸 민요가 종교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험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자니 신앙에 의지해야 했고, 교회 음악 양식을 빌려서 부르자니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조업을 나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정식 성악 발성이나 합창 형식을 따질 상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 코르시카 사람의 민요 중에는 남성 무반주 합창이 많다. 악기 반주 없이 생활의 터전에서 즉석으로 만든 노래이지만, 지극히 신앙에 의지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한 교회 음악 형식을 빌려 노래하더라도, 이들의 창법은 지극히 속요에 가깝다. 바다라는 대자연에 순응하고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하는 코르시카 사람이 자세를 잡고 목청을 가다듬어 정식 성악 발성으로 합창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합창은 협동심과 단결력을 얻어내기 위해 코르시카 어부들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코르시카 음악에서는 여성 무반주 합창이 거의 없는 반면 독창이 많고, 무반주 합창은 거의 남성의 전유물이 됐다.

코르시카 합창에서는 유난히 ‘탄식’이라는 뜻을 지닌 ‘라멘투’가 많이 등장한다. 성모의 탄식, 예수의 탄식 등 여러 제목을 지닌 탄식가가 많은데, 역시 종교적인 내용을 빌려 자신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독창 형식은 대부분 중세시대 때 이탈리아를 떠돌던 음유시인이 코르시카에 들르면서 언어와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 흔적이다. 이처럼 코르시카 음악의 역사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손과 마음, 그리고 입과 입을 거쳐 이루어진 인류 문화의 유산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를 방문해 공연을 가졌던 코르시카 성악가나 합창단은 아 필레타 등 손에 꼽을 만큼 드문 편이다. 코로나의 시대가 지나가면, 코르시카 성당에서 직접 듣는 남성 무반주 합창이야말로 지중해 문화유산의 결정체가 아닐까.

 

황우창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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