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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명 앗아간…” 히틀러·스탈린 대학살의 ‘핏빛 기록’

입력 : 2021-03-06 03:00:00 수정 : 2021-03-05 18: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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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스나이더/함규진 옮김/글항아리/4만4000원

피에 젖은 땅/티머시 스나이더/함규진 옮김/글항아리/4만4000원

 

“이제 타냐만 남았어.” 1941년 말,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열한 살짜리 소녀 타냐 사비체바는 낡은 일기장에 마지막 말을 힘겹게 썼다. 히틀러가 스탈린을 배신하고, 그 도시를 포위한 뒤였다.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를 건넌 누이를 제외한 타냐의 가족 모두가 포위와 농성 끝에 굶어죽은 400만명의 소련인에 포함됐다.

20세기 중반 현재의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 연안에 이르는 이른바 ‘피에 젖은 땅(Bloodlands)’에서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은 수많은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죽였다. 즉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만에 무려 1400만명이 전쟁이 아닌,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책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티머시 스나이더가 쓴 책 ‘피에 젖은 땅’은 독일과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의 기록보관소 16곳에서 10개 언어로 쓰인 자료 등을 토대로 블러드랜드에서 희생된 1400만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 세밀하게 추적한 연구서다.

책에 따르면 소련이 스탈린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세력을 굳히던 시기(1933∼38),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동시 침공(1939∼41), 독소전쟁(1941∼45) 동안 대규모 학살이 블러드랜드에서 벌어졌다. 희생자들은 주로 유대인과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발트 연안에서 살던 사람들이었다.

책에는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의도적으로 기아의 늪에 빠뜨려 죽인 300만명과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에 살해당한 70만명, 2차 대전 시작 무렵 폴란드를 동시 침공한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에 목숨을 잃은 폴란드인 20만명, 히틀러가 스탈린을 배신하고 포위한 레닌그라드에서 농성 끝에 굶어 죽은 400만명, 독일군이 가스나 총탄으로 죽인 유대인 500만명 등의 이야기가 빼곡히 담겼다.

저자는 희생자들의 일기장과 편지, 메모 등은 물론 가해자들의 기록과 각종 공문서 등 수많은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이를 통해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소환해 들려주는 데 성공한다.

특히 그는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대표적인 대량학살의 예로 거론하는 것에 반대한다. 홀로코스트의 주요한 장소인 건 맞지만, 학살된 전체 유대인 6명 가운데 1명꼴 숨진 곳에 불과한 데다가 마지막 ‘살인 공장’이었고, 살인 기술도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죽음의 푸가’ 피날레일 뿐이었다고 정정한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대학살의 진실을 드러낸 뒤 “희생자들의 죽음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히 희생자 숫자를 넘어 낱낱의 개인을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 있다. 막대한 죽음의 숫자를 읊조리는 것은 익명성의 흐름에 숨어버리는 일이다… 개별적인 삶을 부수적으로 다루는 숫자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개인을 말살하는 일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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