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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정인이 방송’이 일으킨 공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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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1-28 22:05:43 수정 : 2021-01-28 22: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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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살려내.”

지난 13일 서울남부지법 앞은 고성과 오열이 난무했다. 16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정인이를 잔혹하게 학대한 양부모에 대한 거대한 분노였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잔인한 아동학대에 대한 분노는 늘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조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인이가 사망한 것은 지난해 10월13일. 사건 발생 이후 언론과 각종 미디어는 정인이 사건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모든 언론에 보도됐고 각종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수차례 방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저 ‘16개월 아기 학대 사망 사건’으로 불리며 “나쁜 사람들”이라는 욕을 하는 데서 끝났다.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였다.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비롯한 분노는 왜 3개월이 지나서야 나타났을까.

그알이 달랐던 점은 시대를 역행했다는 데 있다. 다른 미디어들은 사건 보도 ‘관행’에 따랐지만, 그알은 피해자인 정인이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것이다. 방송에서 직접 “입양된 정인이를 대변해 줄 사람이 없었고, 피해 부위가 얼굴 등에서 나타나는 점 등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현재 잔혹 범죄에 대한 보도 태도는 ‘가해자 중심’이다. 이는 많은 역사와 굴곡을 경험한 후 형성된 것이다.

인권에 대한 개념이 미미하던 1980∼1990년대에는 지존파 등 피의자의 신상이 기준 없이 공개됐다. 2004년 피의자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유영철, 조두순 등은 마스크를 쓴 채 포토라인에 섰다. 이후 많은 흉악범죄는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조두순이 저지른 사건이 ‘나영이 사건’으로 불린 것이 대표적이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09년 강호순 때부터다. 이때도 일부 매체가 ‘관행’을 깨고 피의자의 얼굴을 신문에 공개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인권을 위해 피해자에 2차 가해가 간다는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이를 계기로 2009년 법무부가 ‘특정 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을 추진해 흉악범의 신상공개제도가 시행되게 됐다. 요컨대 피해자 공개는 수십년 전에나 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먼나라 얘기처럼 들리는 가해자의 얼굴보다 선한 피해자의 얼굴이 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방송 후 정인이에 대한 미안함과 양모가 10년 이하의 징역만 살면 된다는 데 대한 분노는 거셌지만 “애꿎은 피해자를 왜 공개하느냐”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알의 결정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수사와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비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극약처방이다. 이에 부응해 아동학대치사라는 편의적인 선택을 했던 검찰도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사회의 관행을 파괴하는 데에 언론의 충격요법 만한 게 없는 셈이다.

다만 앞으로는 언론이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먼저 잔인한 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이 이뤄져 사회시스템이 정의롭게 돌아간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정인아 미안해.

 

정진수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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