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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상하게 부부싸움을 많이 하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 근무며 외출 자제 등 아무래도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부딪치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그걸 지혜롭게 극복하는 경험담도 자주 나온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내는 반대로 생활의 리듬이 깨져서 예민해 있는지라 말하기가 귀찮아졌다. 남편은 대꾸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아내에게 자기 말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고 아내는 말이 많은 남편 때문에 피곤해진다. 궁리 끝에 아내는 책방으로 달려가 시집 서너 권을 샀다. “처음 우리 만났을 때 당신은 문학청년처럼 순수했어.” 과연 그랬나 미심쩍은 추억까지 소환해서 남편을 기분 좋게 한 다음 시집을 내밀었다. 말하고 싶을 때마다 큰 소리로 시를 낭송하면 어떨까 하는 아내의 바람대로 남편은 집안에서 시를 읊고 다닌다. 스스로 격상된 기분을 느끼는지 눈빛도 순하고 따스하게 바뀌었다. 덕분에 다툴 일이 줄어들었다.

TV 리모컨 쟁탈전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아내는 가수 임영웅의 노래를 들어야 사는 맛이 나고 남편은 시사 프로를 보며 감 놔라 대추 놔라 참견을 해야 스스로 존재가치를 느낀다. 결국 서로 TV 보는 시간을 정했다. 만일 상대방이 TV 시청 권한이 있는 시간에 꼭 내가 보고 싶은 프로가 생기면 시청료를 만원 내고 양보받기로 했다. 단순한 약속이 평화를 불러 온 게 신기할 정도다. 가끔씩 만원을 버는 재미도 쏠쏠하고 어느 날은 그 만원으로 찐빵과 만두를 사와서 함께 맛있게 먹기도 한다.

집안에서 무료해하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요리를 가르치기로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간 잘 보내기로 선택했는데 남편도 한두 가지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줄 알아야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처음에 남편은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재미났다. 그런데 참 만만치 않은 게 음식 만들기다. 이 힘든 걸 평생 편하게 받아 먹기만 했다는 게 문득 미안하다. 그래서 아내의 젖은 손을 잡아 본다. 순간 부부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서로에게 고맙다는 걸 느낀 순간이다.

힘든 시기에는 당연히 짜증이 나고 짜증은 그냥 두면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진다. 그래서 상대방을 할퀴게 되고 결국 상처를 준다. 지혜가 필요하다. 가장 쉬운 게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은가.

세수도 안 하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잔소리 한 마디쯤 하고 싶은데 꿀꺽하고 칭찬을 던진다. 당신 오늘 멋지네. 장동건 눈빛을 닮았어. 단지 눈이 크다는 이유로 대배우 장동건을 소환한다는 게 가당치 않아서 눈빛을 선택했다.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비로소 몸을 움직여 세수하러 간다. 즐거워서 즐거운 게 아니다. 힘들기 때문에 더 즐거워야 한다.

조연경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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