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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불러보는 ‘아버지’… “이제야 뵈러 갑니다”

입력 : 2020-10-26 09:06:42 수정 : 2020-10-26 13: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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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발굴된 6·25 전쟁 전사자 신원 확인돼
부인과 세 살배기 아들을 꿈에도 그렸을 故人
전사 69년 만에 유해로 유가족 품에 돌아간다
6·25전쟁 전사자로 유해 발굴을 통해 최근 신원이 확인된 故 명한협 일병(1925∼1951). 연합뉴스

“돌아오시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뵙고 싶네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태어난 명갑원(72)씨는 국방부에서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렇게 말했다. 어느덧 칠순을 넘긴 명씨에게 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많지 않다. 6·25전쟁에 참전해 1951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때 명씨의 나이는 불과 3살, 아버진 26살이었다.

 

26일 국방부에 따르면 명씨는 유전자(DNA) 시료를 제공하고 10년의 긴 기다림 끝에 아버지 유해를 찾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17년 5월 강원도 춘천 오항리 일대에서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故) 명한협 일병으로 확인된 것이다.

 

명씨는 꼭 10년 전인 2010년 아버지 유해를 찾고자 DNA 시료 채취에 응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발굴된 유해에서 채취한 DNA 시료와 보관 중인 명씨의 DNA 시료를 대조하는 작업을 한 끝에 결실을 이뤘다. 전사자 신원 확인은 지난 2000년 4월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해 첫 삽을 뜬 뒤 153번째다.

 

전사한 명 일병은 1925년 8월 경남 사천시 이홀동 일대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하고 부모님께 효도해 가족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외아들 갑원씨를 낳은지 3년 만인 1951년 2월 고인은 당시만 해도 임시수도 부산에 있던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다시 남쪽에 형성되면서 국군과 유엔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때였다.

 

국방부 장병들이 비무장지대(DMZ)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국방부는 고인이 육군 제6사단 소속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병 계급장을 달고 가평·화천 진격전(1951년 5월 22∼30일)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전투는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고 강원 화천까지 진격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6사단 2연대는 사흘 동안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냈고, 이후 사단 병력 전체가 중공군을 추격하며 경기 가평과 강원 춘천을 거쳐 화천 발전소까지 60㎞가량 전진하는 값진 승리를 일궜다.

 

부인, 그리고 세 살배기 아들을 꿈에도 그렸을 고인은 그만 포화 속에 스러져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고인의 아내는 평생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아들 명씨는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고 살았는데 찾게 되어 정말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아 덤덤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빨리 아버님을 만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방부는 유족과 협의해 고인의 귀환 행사와 안장식을 치를 예정이다. 유해는 최고의 예우를 갖춰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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