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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의맛깊은인생] 지금 맛이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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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21 00:09:08 수정 : 2020-10-21 0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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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이 와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바람이 차갑고 하늘은 속절없이 푸르다. 나뭇잎의 색깔이 바뀌었고 새벽에는 우윳빛 입김이 나온다. 그리고 맛있는 계절이 되었다. 전어며 삼치, 대구, 굴, 방어….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지난주 올가을 처음으로 전어를 먹었다. 마트의 수산물 코너며 동네 횟집마다 ‘전어 개시’라는 종이가 붙은 지는 오래됐다. 생선은 ‘개시’ 이후 적어도 보름 이후에 먹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제대로 맛이 든 걸 먹을 수 있다.

전어는 기름이 잔뜩 올라 있었다. 씹을 때마다 이 사이에서 고소한 맛이 번졌다. 더 있으면 뼈가 억세진다. 삼십 년 전 마산에서 살 때 돈이 없어 전어를 먹곤 했다. 어시장에서 오천원치를 사 먹으면 어른 네 명이 배가 불렀다. 삼겹살 사먹을 돈이 없었던 청춘들은 전어를 사서 초고추장과 된장을 섞은 막장에 푹푹 찍어 먹었고 멜라민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당근과 오이를 씹었다.

삼치도 곧 제철이다. 지금부터 맛이 들고 있다. 고흥이나 여수, 해남 등 남쪽의 해안 마을에서는 삼치를 회로 먹는다. 김 위에 더운 밥을 올리고 삼치 한 점을 얹은 다음 양념장을 올려 먹는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진하며 끝맛이 달짝지근하다. 활어와는 또 다른 삼치회 맛에 한 번 빠지면 겨울만 기다린다.

서울의 생선구이집에서 파는 삼치는 30~50cm 정도의 작은 것들이다. 큰 삼치에 비할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몸통에 기름이 번지르르 흘러 먹을 만하다. 구이 말고도 무와 각종 채소를 깔고 조림으로 먹어도 맛있다. 생선가스로도 좋다.

삼치는 적어도 1kg이 넘어야 삼치라 불리고, 3kg이 넘어야 ‘아, 삼치구나’ 하는 대접을 받는다. 회로 먹는 것은 큰 것들이다.

바람이 더 차가워지면 거제 외포항에서는 대구가 잔뜩 잡힐 것이다. 대구는 회로는 안 먹고 탕으로 먹는다. 겨울이면 꾸덕꾸덕하게 말린 대구에 고니를 잔뜩 넣고 탕으로 끓이면 추위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대구 역시 삼치와 마찬가지로 5kg 이상은 되어야 맛있다. 서울에 드물게 대구회를 내는 집이 있다. 소금과 식초를 쳐서 찬물에 씻은 후 내는 데 제법 쫄깃하다.

굴도 곧 등장할 것이고 한 달쯤 뒤면 횟집에서는 ‘대방어 있습니다’라는 종이를 문에 붙일 것이다. 겨울 대방어는 참치보다 더 맛있다. 삼치회와 굴전으로 밤을 샌 술꾼들은 매생이탕으로 해장을 할 것이다.

곧 상강이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때다. 서리가 내려서 날은 더 추워질 것이다. 그래도 맛있는 것들은 더 맛있어지고 우리는 그 음식들을 두고 모여 앉아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것이다.

한 계절이 지났고 또 한 계절이 어김없이 왔다. 올겨울은 어느 해보다 힘든 계절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니 견딜 만하지 않을까.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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