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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비극의 시작은 권력 사유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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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21 00:11:57 수정 : 2020-10-21 00: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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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겨냥한 秋의 지휘권 발동
사기 피해자 울리는 막장드라마

몇년 전 세간에 화제가 됐던 TV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 음모와 배신의 권력 다툼을 실감나게 다뤘다. 검찰 조직을 등에 업은 검찰총장은 출세욕의 화신으로, 정의로운 듯했던 여성 법무장관은 아들의 병역비리를 감추고 총리 후보가 되려는 부패 인사로 그려졌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처한 상황은 확연히 다르지만 펼쳐지는 양상이 극적인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추 장관은 그제 헌정사상 세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칼을 날렸고 윤 총장은 일단 칼날을 잡았다.

천문학적 규모의 펀드 사기범 구명 편지에서 시작된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다분히 감정적으로 비쳐진다. 윤 총장과 검찰 수사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사기범 김봉현 말이 맞다고 확신한 것도 이상하지만, 윤 총장 가족 수사 4건을 조목조목 적시한 대목이 특히 그렇다. 재임 기간 연거푸, 그것도 무더기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 윤 총장이 이미 가족 관련 수사에 대해 보고를 받지 않고 있는데도 굳이 지휘권을 박탈한 건 누가 봐도 정치적이다. ‘더 이상 버티지 말고 나가라’는 뜻이다.

황정미 편집인

검찰 수사 끝에 물러난 조국 전 장관 후임인 추 장관의 일성은 검찰개혁이었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같은 정책보다는 윤석열 측근 솎아내기 같은 검찰 인사에서 그의 칼솜씨가 돋보였다. 조국 일가 수사와 청와대 울산시장 개입 의혹 수사 등을 맡았던 윤 총장 측근 검사들은 대거 지방으로 좌천됐다. 시종 칼끝은 윤 총장이었다. 지난 6월 한명숙 전 총리 위증강요 의혹사건 배당과 관련해 그는 “장관 말 겸허히 들었으면 지나갔을 일을 지휘랍시고 해서 일을 꼬이게 했다. 역대 법무부 장관이 말 안 듣는 검찰총장 끌고 일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검찰 조직의 독립, 정치적 중립성을 검찰개혁 핵심으로 아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 연루 의혹이 제기된 채널A 수사에서 첫 지휘권을 발동했지만 수사팀은 한 검사장 공모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 이번에도 김봉현 편지에 윤석열 이름이 나오자 지휘권을 꺼내들었다. 수개월간 추·윤 갈등을 지켜본 국민들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여당은 “검찰의 공작수사를 막기 위해서”라는데 손, 발, 몸통 잘린 윤 총장체제에서 가능한 일인가. 일각에선 펀드 게이트가 여권으로 불붙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청와대 울산시장 개입 의혹 수사가 흐지부지된 것처럼 말이다. 윤 총장은 지휘권을 수용하면서 “대규모 펀드사기를 저지른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 모두를 철저히 단죄해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했다. ‘비호세력’에 방점을 찍는 이들이 많다. 이제 그 수사 결과 책임은 윤 총장이 아니라 추 장관이 지게 됐다.

검찰 조직이 여태 ‘정치검찰’ 꼬리표를 떼지 못한 건 공권력을 사적으로, 기득권을 위해 이용해서다. 당연히 검사 공명심(功名心)이나 집단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장관이, 정부가 정치적 입지를 위해 권력을 사유화하는 행태도 있을 수 없다. 검찰 수사 독립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써야 할 수사지휘권을 특정 인사를 찍어내려고 쓰는 건 권력 남용이다. 역대 정권을 흔든 진원지도 권력의 사유화였다. 이명박정부 초기 이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을 겨냥해 권력 사유화 논쟁을 일으켰던 정두언 전 의원은 생전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정권마다 실패하는 과정이 판박이처럼 비슷했다. 권력은 공공재인데 지도자들은 권력을 사유물로 생각한다. 절대왕조식 사고다.”

땅 짚고 헤엄친 사기범에 속아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 눈에 이번 지휘권 파동은 막장드라마일 뿐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라”는 대통령 지시대로 사기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일이다. 추 장관이 감독 겸 주연인지, 총연출자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닐 공산이 크다. 박근혜정부 시절 국감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던 윤 총장이 내일 국감장에서 과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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