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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싫어 떠난 13살 소년, 미군 돼 독일 무찌르다

입력 : 2020-09-25 06:00:00 수정 : 2020-09-24 19: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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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유대인 탄압 피해 1938년 미국으로 탈출
2차 대전 때 유럽 전선 참전… 독일군 포로 심문
“희생자로 독일 떠났지만 돌아왔을 때는 달랐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울 당시의 젊은 프랭크 콘(왼쪽)과 95세의 노병인 현재의 모습. 미 육군 홈페이지

1930년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한 집안의 아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의 일원이 돼 독일군을 무찌르는 데 앞장섰다. 전쟁 당시에는 정보부대 병사였고 전후에는 군사경찰(옛 헌병) 병과 장교로 변신한 이 노병이 최근 미군에서 헌병한테 주어지는 최고 권위 훈장을 받아 눈길을 끈다.

 

24일 미 육군에 따르면 예비역 육군 대령 프랭크 콘(95)이 최근 ‘마흐쇼세 훈장’(the Order of the Marechaussee) 수훈 대상자로 선정됐다. 마흐쇼세 훈장은 미군에서 군사경찰 관련 업무 수행 능력이 특출한 군인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군사경찰 병과 장병들 사이에선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통한다.

 

콘 예비역 대령은 원래 독일 출신이다. 그가 태어난 1925년만 해도 독일 동부지방의 영토였던 블레슬라우가 고향이다. 2차 대전의 결과로 패전국 독일에서 떨어져나가 폴란드 땅이 되었으며 현재는 ‘브로츠와프’로 불린다.

 

그의 가문은 유대인이었다. 이 때문에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잡고 나치가 유대인 탄압을 본격화하면서 콘의 가족도 큰 타격을 입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가 문을 닫고 심지어 온 가족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처지가 되자 그들은 미국행을 결심했다.

 

1938년 낯선 미국 땅에 도착한 13살 소년 콘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했다. 영어를 한마디로 할 줄 몰랐던 콘에게 영화는 최고의 어학 교재였다. 1939년 개봉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콘이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인데 그를 통해 영어도 많이 배웠다고 한다.

 

미국이 2차 대전에 뛰어든 뒤인 1943년 콘은 18살의 나이로 미 육군에 입대했다. 자신이 독일 출신이란 점을 깨끗이 잊은 콘은 오히려 자신과 가족을 버린 독일을 ‘응징’한다는 점에서 묘한 흥분마저 느꼈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그는 정보부대에 배치돼 미군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에서 포로로 붙잡은 독일군을 심문할 때 통역을 담당했다.

독일에서 태어나 13살 때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피난한 뒤 미 육군 일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대령까지 진급한 프랭크 콘(95) 예비역 육군 대령. 미 육군 홈페이지

1944년 말부터 1945년 1월까지 이어진 벌지전투 당시에 그는 고립돼 헤메다가 되레 다른 미군 분대에 붙잡히는 고초도 겪었다. 비록 미군 군복을 입고 있지만 영어가 서툰데다 독일어 억양이 강한 그를 본 미군의 한 중위는 ‘미군으로 가장한 독일군 첩자’라고 의심했다. ‘작년 월드시리즈 우승 팀이 어디냐’, ‘미국 국가를 한 번 불러봐라’ 등 온갖 질문과 요구를 받고 겨우 미군임이 입증돼 풀려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종전 이듬해인 1946년 하사를 끝으로 미 육군을 떠난 콘은 뉴욕에서 대학에 다녔다. 졸업 후에는 미 육군의 정식 소위로 임관했다. 이번에 받은 병과는 ‘군사경찰’이었다. 그는 1978년 대령을 끝으로 제대할 때까지 군에 있으면서 한국, 베트남, 그리고 독일 등에서 해외파병 경력도 쌓았다. 95세의 나이에 영예로운 마흐쇼세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노병은 담담한 소감을 내놓았다.

 

“내가 독일을 떠날 때 나는 희생자였지. 2차 대전이 터져 독일에 돌아가니 입장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오. 오히려 내가 포로로 잡은 독일군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입장이 된 거야. 그 한가지만으로도 독일에 돌아왔다는 게 어찌나 기뻤는지….”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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