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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력에 맞는 직장을 얻었고, 근무환경도 좋은 편이었다. 일가족이 차례로 채용되는 횡재도 누렸다. 그런데 결국 살인자가 되었다. 박 사장은 끊임없이 냄새와 선(線)의 서사를 읊조린다.

“그 냄새가 선을 넘지.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잖아.” 가든파티에서 인디언 코스튬을 입고 열일을 했건만 박 사장이 코를 싸쥐고 열쇠를 요구했을 때 그는 기어이 선을 넘고 말았다. 반지하의 묵은내는 지하철과 포개졌고, 영화 ‘기생충’은 냄새 때문에 인간이 이성을 잃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형숙 서원대 교수·다문화 이중언어교육

1657년 런던에서 한 이발사가 냄새 때문에 기소되었다고 한다. 그가 마시는 음료의 ‘기묘한’ 냄새로 이웃은 큰 고통을 받았고 견디지 못한 이웃이 ‘성가심’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그 음료는 커피였다. 이발사가 아니라 남작이 마셨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터. 묵은 냄새뿐 아니라 커피향도 이렇듯 인간의 이성을 잃게 만든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사회문화적 편견이 작용하는 사례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요즘이야 커피는 특유의 향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는 커피향에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커피를 파는 다방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었다. 커피향과 쌍화차와 라면 냄새가 어우러진 시골다방에서 다방레지를 보게 되었다. 레트로풍의 잔에 담긴 커피를 보고 있노라면 반사적으로 유년으로 돌아가 쌍화차 냄새와 함께 그녀가 포개진다. 그러나 유럽풍의 커피잔이나 종이컵에 담긴 커피에는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다방레지와 바리스타 사이 사회문화적 간극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여름철 땀 냄새 때문에 언니에게 더러 야단을 맞았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냄새 때문에 예민하게 신경을 쓴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달라졌다. 같이 공부하던 한국 유학생 대부분이 냄새에 예민해져 있었다.

“미국 학생들은 특유의 그 냄새가 나거든. 치즈나 소고기를 먹어서 그런가?”

“우리도 김치를 먹으니까 우리 몸에서도 나지 않을까?”

“마늘 때문에 한국인들 몸에서 마늘 냄새가 날 거야.”

“우리는 못 느끼지만 한국인 특유의 냄새가 난대.”

“그래서 난 김치에 마늘을 안 넣어.”

이야기는 미국 학생들 냄새로 시작해서 항상 김치와 마늘 냄새로 이어지며 자기검열이 이뤄졌다. 다들 몸에서 냄새가 날까봐 전전긍긍했고 스스로 생활을 통제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냄새 염려증이 떠돌고 있었다. 나도 규칙적으로 향수를 사용했다. 나의 한국인 냄새가 선을 넘을까 내심 불안했다. 십년 후 박사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갔을 때는 유학생들 사이에 염려증은 거의 없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으로 보인다.

얼마 전 나는 구글에 “한국인 냄새 유전”이라는 검색어를 넣어 보았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냄새가 적게 난다는 과학기사가 튀어나왔다. 염려증은 사회문화적으로 소멸되기 시작하여 과학으로 마무리되었다.

 

조형숙 서원대 교수·다문화 이중언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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