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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광주행 택한 노태우 장남의 진정성에 ‘물음표’ 붙은 이유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20-06-01 07:00:00 수정 : 2020-05-31 23: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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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장남 노재현, 부친 대신해 과거사 사죄
피해자·유족 등은 의미 두면서도 진정성에 의문 제기
회고록 개정판 출판 등 진상 규명 협조 및 직접 사과 등 요구
지난달 29일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변호사 광주 북구 운정동 소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헌화·분향을 한 뒤 한 묘역 앞에 무릎을 꿇고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광주=뉴스1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 노재헌 변호사는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은 올해도 광주를 찾았으나 피해자들은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했다.

 

당시 신군부의 핵심으로 학살 책임을 부인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대조돼 의미가 있으나 진정성을 부족해 보인다는 게 피해자들의 인식으로 보인다.

 

노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30분쯤 광주 북구 운정동 소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20여분동안 머물렀다.

 

잎사 그는 지난해 8월23월에도 묘역을 참배했었고, 12월5에는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의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 전시관을 둘러본 데 이어 5·18 당시 가족이나 본인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쉼터인 남구 양림동 소재 오월 어머니집도 방문한 바 있다.

 

노 변호사는 신군부 지도자의 직계가족 중 처음으로 5·18 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한 만큼 그 행보는 높이 살만 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는 지난달 방문 당시에도 민주의 문에 마련된 방명록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기리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씨앗이 된 고귀한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고 적었다.

 

5·18 추모탑에서는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제13대 대통령 노태우’라고 적힌 아버지 명의 조화를 바치고 분향했다. 신군부의 수뇌의 조화는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노 변호사는 또 김의기·김태훈·윤한봉 열사의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의 뜻을 전했으며, 인근 망월동 구묘역인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이동해서도 5·18 당시 참상을 알린 독일 기자인 위르겐 힌츠펜터 추모비를 살펴본 뒤 이한열·이재호 열사 묘소를 참배했다. 이한열 열사 묘에는 미리 준비한 어머니 김옥숙 여사의 조화를 올려놓았다. 이어 옛 전남도청을 둘러본 뒤 오월어머니집 찾는 것을 끝으로 광주 방문을 마무리했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과거사 사죄에 나선 노 변호사의 행보에도 피해자들은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진정으로 바라는 진실 규명에 대한 이렇다 할 진정을 보이지 못한 탓이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수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달 29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변호사(오른쪽)이 광주 남구 양림동 소재 오월 어머니집을 찾아 김형미 사무총장(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월 어머니집은 5·18 당시 가족이나 본인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쉼터다. 광주=뉴시스

 

◆5·18 기념재단 “참배에 사죄의 의미 있다면 그 의미 구체적으로 밝혀야”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지난달 31일 뉴스1에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참배인지, 아니면 희생당한 분들에게 내가 무슨 이유로 죄를 지어 사죄한다는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줬으면 한다”며 “노 전 대통령 개인이 개인에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신군부 수뇌로서 1980년 당시 광주 시민들에게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요구했다.

 

이어 “공동체 차원에서의 사죄가 있어야 한다”며 “참배에 사죄의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줬으면 한다”고도 주문했다.

 

특히 조 상임이사는 “5·18이 일어난 게 유언비어 때문이라고 했던 회고록도 바로잡아야 한다”며 “구체적인 자료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그런 자료도 제출해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아울러 “5월 단체와의 공식적인 만남 등을 통해 한발자국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단체 “조용히 와서 참배하고 가는 것이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봐야할지?”

 

김이종 5·18부상자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것은 다른 학살 책임자보다 낫지만 공식적인 사과 없이 조용히 와서 오월영령들만 참배하고 가는 것이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봐야할지 모르겠다”며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같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오는 게 맞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오월 단체장을 만나서 사과를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말로 하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사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노 전 대퉁령의 회고록에 나와있는 유언비어 부분도 수정해야 한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문흥식 5·18구속부상자회장도 “그냥 일방적으로 와서 참배를 하는 것보다 오월단체와 조율된 상태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을 해야 한다는 오월 3단체의 입장을 (노 변호사 측에) 전달했다”며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재헌씨가 공론화 등을 통해 사과하거나 조화를 보내야 하는데, 그 어떤 절차나 방법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조화를 보내고 아들을 참배시킨 것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볼 수 있지만 자칫 면죄부를 주는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걱정된다”며 “재헌씨가 아버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이야기 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부연했다.

 

이와 함께 “1980년 5월 당시 발포 명령자 등 진상 규명에 동참하는 등이 함께 진행돼야 오월단체들도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마음을 연 상태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해 전달했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노 변호사를 만난 김형미 오월 어머니집 사무총장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진실규명 차원에서 5·18진상조사위원회에 자료를 제출하고, 진정한 사죄가 이뤄질 수 있도록 꼭 전달해주시면 좋겠다”며 “5·18 관련 법이 국제법에 맞는지 법률적으로 검토해달라”고도 요청했다.

 

노 변호사는 지난해 광주 방문 당시 부친의 회고록 개정판 출판 요구에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문제의 회고록은 2011년 펴낸 것으로,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는 취지의 주장이 담겨 있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신군부의 진압 책임을 회피한 회고록을 고치지 않고 참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피해자들의 설명이다.

 

노 변호사의 대리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 병상에 있으나 육성으로 사과하는 등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촉구도 나온다.

 

김영훈 5·18유족회장은 지난달 29일 “노씨의 잇단 참회 행보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겠다”며 “아버지의 뜻이 얼마나 담긴 것이고, 무엇을 사죄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계속해서 “진정 노 전 대통령의 뉘우침을 아들로서 대신 전달하는 거라면 변죽만 울리지 말고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가능성은?

 

노 변호사의 잇따른 광주행을 두고서는 다른 해석도 고개를 든다.

 

그는 오랜 병환에 시달리고 있는 부친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면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 여사의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가족과 숙원과 달리 상황은 여의치 않다.

 

앞서 지난해 1월 천정배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은 국가보훈처로부터 ‘헌정질서 파괴범은 사면 복권이 되었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는 유권 해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지난 4·15 총선 후 과거사에 대한 여권의 기류도 강경하다 보니 노 전 대통령이 사면 복권을 받았다고 해도 사후 국립묘지에 묻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노 변호사의 광주행은 지역 민심을 얻고, ‘용서와 화해’라는 프레임을 아래 부친 사후 국립묘지행에 대한 옹호론을 형성할 목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왼쪽)가 광주 남구 양림동 소재 오월 어머니집을 방문하고 있다. 오월 어머니집은 5·18 당시 가족이나 본인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쉼터다. 광주=뉴시스

 

다만 앞서 5·18 유족 등의 반응으로 미뤄보면 전 전 전 대통령 측과 대비되는 행보로 긍정적인 여론에도 불씨가 지피긴 했으나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진실 규명에 이렇다 할 기여를 내놓지 못하는 한 국립묘지 안장은 요원해 보인다.

 

◆檢 수사에 노재헌씨 행보 이어질지 미지수

 

노 변호사가 앞으로도 활발하게 광주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에게는 오래 전부터 역외탈세 혐의가 꼬리표처럼 붙어왔다.

 

앞서 전 부인은 2013년 노 변호사가 해외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바하마의 신탁계좌에 수백억원을 보유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뉴스타파도 2016년 노 변호사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 10곳을 설립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동안 이 같은 관련 혐의를 예의주시하던 검찰은 최근 수사에 본격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노 변호사의 역외탈세 혐의 자료를 ‘해외불법재산환수 조사단’으로부터 이첩받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노 변호사의 활동이 크게 제약받는 상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의 한 전문가는 “그는 어떻게든 부친의 과오를 빨리 씻어내고, 치적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그 시작은 광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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