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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영재 출신의 K클래식 작곡가 “영감 기다리지 않고 그때그때 보관”

입력 : 2020-06-01 05:00:00 수정 : 2020-05-31 20: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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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주목 받는 작곡가 김택수

김택수(사진)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곡가다. 수많은 작곡가 중 자신의 음악이 악보를 벗어나 무대에서 연주되는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런데 김택수는 내년 상반기까지 연주 일정이 잡혀 있고 작곡 의뢰도 쌓여있다. 특히 세계 최고 연주단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국 뉴욕필하모니가 올 1월 그의 대표작 ‘스핀-플립’을 연주했고 올 연말에는 다시 ‘더부산조’를 공연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디트로이트심포니, 샌프란시스코심포니, 볼티모어심포니, LA필하모닉 등 미국을 대표하는 악단이 그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뉴욕필의 경우는 어느 날 갑자기 ‘당신 음악에 관심있다. 악보를 보내달라’고 뜬금없이 이메일이 왔어요. 별 연고도 없고 지휘하는 분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래서 악보를 보낸 후 계속 연락이 이뤄져서 올 초 제 작품을 연주했고, 연말 공연 일정도 거의 동시에 정해진 거죠. 제 작품 연주 요청이 지난해부터 갑자기 늘었습니다. 2015년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서 제 음악을 연주한 이후 한 3년여 일이 없었는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듯해요.”

보통사람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경우가 많은 현대음악이지만 김택수 음악은 다르다. 누구라도 큰 어려움 없이 곡을 감상할 수 있다. ‘윤이상 작곡상’ 수상으로 그의 이름을 알린 ‘스플래쉬’(2009)부터 시작해서 어린 시절 먹던 찹쌀떡을 담은 무반주 합창곡 ‘찹쌀떡’(2012), 커피 원두 가는 기계 소리를 소재로 한 ‘쉐이크 잇’(2014), 농구공 튀는 소리의 ‘바운스’(2014) 등 유머러스한 요소를 활용한 작품으로 음악적 실험을 전개해왔다. 김택수는 “현대음악을 하는 작곡가 중에선 제가 좀 더 접근하기 쉬운 음악을 하는 쪽인 것 같긴 하다. 진보적인 음악을 하는 게 중요하긴 하겠지만,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이라도 거부감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필요하다. 제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솔직하게 만들면 어느 정도는 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택수는 최근 한국 전통을 클래식 선율에 올려 널리 알리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문묘제례악을 현대음악으로 재해석한 ‘아카데믹 리추얼-오르고 또 오르면’(2014)과 판소리를 소재로 한 ‘로터스 보이스’(2016), 가야금 산조를 활용한 ‘더부산조’(2017) 등으로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국악을 서양음악에 담아냈다. 그런 작업에 대한 평단의 호평이 미국 전역에서 김택수 표 ‘K클래식’ 연주로 이어진 셈이다. 

 

“K클래식이란 말이 이전부터 있기는 했죠. 실제 요즘 ‘너 말고 다른 한국 작곡가 누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서 한국 작곡가를 정리해서 웹사이트에 올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K팝은 자본의 힘을 얻을 수 있는 데 비해 K클래식은 그 정도 규모를 만들기 어렵고, 태생적으로 클래식은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는건데 K클래식이 자리 잡기까진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그래도 서양음악사에 우리나라가 꽤나 늦게 합류한 건데 새로운 관점이나 배경을 가지고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점이 서양에서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는 거 같아요.”

 

미국에서 지금은 시러큐스대, 그리고 올가을부터는 샌디에이고주립대에서 교편을 잡게 될 김택수는 현재 국내 체류 중이다. 6월 초로 예정됐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더부산조’ 연주를 위해서 귀국했는데 방역 강화로 일단은 공연 일정에 급제동이 걸린 상태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음악계에서도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가상현실 등을 어떻게 음악에 적용할 수 있을지 논의가 이뤄진다”며 “또 한국에선 음악 연주가 재개됐지만 미국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장은 공연장에서 병에 옮을까 걱정해야 하는 시대지만 음악은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음악으로 어떻게 힘든 이들을 힐링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1980년생인 김택수는 서울 과학고-서울대 화학과로 이어지는 과학영재의 길을 걷다가 대학 4학년 때 작곡과로 전과해서 미국 인디애나음대에서 작곡 박사학위를 마친 이색 이력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는데 뒤늦게 결심을 한 경우라고 한다. “전과 안 했으면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거나 연구소 수석연구원쯤이었을 테죠. 원래 작곡보다는 재즈음악을 피아노로 하고 싶었는데, 4학년 1학기 마치고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가서 삶에서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면서 음악을 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작곡과에서도 처음에는 ‘끝까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제가 꾸준히 하는 모양을 좋게 봐줬죠.”

 

김택수의 다음 신작은 ‘소나타 아마빌레’다. 올 10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초연될 예정이다. 김택수는 “소나타 아마빌레는 거의 완성했고 그다음 곡 아이디어를 쌓고 있습니다. 평소 작곡은 영감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고 그때그때 영감을 ‘킵(보관)’해둡니다. 좋은 악상도 악보에 자리 잡을 때까진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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