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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들이 먹는 술?… “소개팅 때 마셔도 좋아요”

입력 : 2020-03-31 06:00:00 수정 : 2020-04-01 14: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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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이미지 깬 전통주… 소비자 ‘취향저격’ / 독특한 양조기술에 맛과 향 뛰어나 / 세련된 디자인… 미적 요소 더해져 / 풍류적 느낌 찾는 2030 즐겨찾아 / 2000종 시중 유통 골라 먹는 재미 / 세계시장 주류 경쟁력도 무궁무진

“요즘 ‘힙’하다고 하는 곳들 한번 가보세요. 전통주 하나쯤은 다 있을 걸요?”

애주가를 자처하는 30대 직장인 박철민씨는 얼마 전 전통주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계기는 ‘힙지로(힙하다+을지로)’. 80년대 분위기를 낸 을지로의 어느 주점에서 전통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접하면서다. 약주, 청주, 탁주… 이름에서 풍기는 올드한 인상과 달리, 술에서 나는 향긋한 단맛이 입에 ‘착’ 달라붙었다. “소개팅 때 마셔도 될 만한 술”이란 것이 그의 평가다.

박씨가 유별난 취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최근 전통주를 들여놓은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그 ‘맛’에 뒤늦게 눈을 떴다는 20·30대가 적지 않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의 독특한 양조 기술,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맛의 깊이와 다양성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 이윤희 한국양조연구소 소장은 과거 ‘아저씨들이나 먹는 술’로 치부되던 전통주가 이제는 ‘취향’의 영역 초입쯤에는 들어섰다고 본다.

“옛날 막걸리 병 보세요. 디자인이랄 게 없었잖아요. 지금은 아니에요. 맛도 맛이지만 브랜드 이미지나 병 디자인 등 외부적인 요소들이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고급 요리에 곁들이는 경우도 많고요. 취향이 된 셈이죠.” 지난 25일 그를 만나 우리 전통주가 가진 매력 등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이윤희 한국양조연구소 소장은 우리 전통주가 서양의 와인이나 위스키 등과 비교해 맛과 향, 양조 기술 모두 뒤처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청년층은 물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술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재문 기자

◆“양조 기술은 서양보다 위”

서양의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술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양조 기술만 놓고 봤을 땐 우리술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외려 만들기가 더 까다롭다. 예컨대 와인의 경우 이미 당화된 상태여서 효모만 넣으면 되지만, 전통주는 당화 작용과 효모에 의한 발효 작용이 동시에 이뤄지는 ‘병행복발효’ 방식이어서 섬세한 컨트롤이 필수적이다. 뛰어난 제조 기술 없이는 만드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양의 술이 비싸다고 해서 그 기술까지 우수하다고 볼 순 없죠. 그 술들은 사실 세월이 가치를 빚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물론 보관 기간이 짧다는 건 전통주의 큰 약점이다. 하지만 거꾸로 보면 강점이 될 수 있다. 생막걸리처럼 열처리 과정이 없는 ‘생주’는 양조 과정에서 열을 가하는 ‘살균주’에 비해 보관이 어렵지만 더 풍부한 맛과 향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주는 특유의 감칠맛은 물론 미생물 작용 등으로 인한 영양적 가치도 뛰어나다.

뭣보다 ‘맛’이 좋다. 접할 기회가 드물어서 그렇지 전통주는 일단 한번 접하게 되면 계속 찾게 된다. 을지로 ‘술다방’이나 이태원 ‘안씨막걸리’ 등 힙스터들이 찾는 가게서부터 미쉐린 스타를 받은 ‘라연’이나 ‘권숙수’ 같은 고급 레스토랑까지 전통주를 구비해놓는 건 다름 아닌 맛 때문이다. 술에 깃든 풍류적 느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술맛의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우리 양조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종류가 많으니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전통주 브랜드는 2000여개. 취향의 전제 조건인 ‘다양성’은 충분히 갖춰져 있는 셈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단테 조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전통주를 맛본 뒤 올 초부터 이윤희 소장 아래에서 각종 술 담금법을 배우고 있다. 이창수 기자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통해”

맛에는 국경이 없다. 와인이나 맥주를 우리가 매일 마시는 것처럼 전통주도 얼마든지 그들의 식탁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계 미국인인 단테 조(32)는 오로지 전통주의 맛만으로 그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는 지난해 11월 길거리에서 열린 한 시음회에서 전통주를 접하고 나서 삶의 진로가 달라졌다.

“길에서 우연히 먹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곧바로 ‘이거 만드는 법 좀 알려 달라’고 했죠. 전통주 특유의 맛에 세련된 브랜딩, 디자인 등 미적 요소가 더해지면 당장 미국에서 통하겠다 싶더라고요.”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전통주 담금법을 응용한 주류 브랜드를 차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난해 11월 커피빈코리아와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각각 개성 강한 전통주들을 판매용으로 내놓으면서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전통주의 비즈니스적 가치에 주목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 이 소장의 말이다.

“연구소를 처음 연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지인들과 먹으려 배운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엔 ‘사업 목적으로 배운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주류 점유율로 따지면 물론 갈 길이 멀죠. 하지만 젊은 세대,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고요.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한국인 입맛엔 전통주만 한 것이 없거든요. 다음번 술자리, 소맥 대신 전통주 한잔 어떨까요?”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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