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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행동인가, 퇴영적 잔재인가 / 착한 습관의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

낯선 바이러스 감염증이 낳은 불안으로 자신의 생활 리듬이 깨졌다고 툴툴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손을 자주 씻거나 바이러스 차단 마스크를 하고, 다중이 모이는 자리를 피하며, 악수를 삼가라는 권유를 받는다. 유치원과 대형 학원에 휴원 조치가 내려지고, 초·중·고교의 개학은 거의 한 달이나 미루어졌다. 대학교의 새 학기 개강이 늦춰지고, 강의는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었다. 교회 예배나 성당 미사, 사찰의 법회는 다중이 한자리에 모이는 방식 대신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우리가 처음 겪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사회의 전 부분에서 빚어지고 있다.

장석주 시인·인문학 저술가

한 전염병의 번짐으로 일상의 습관과 생활 리듬이 바뀌는 상황이 불거진 것은 자명하다. 습관은 우리 의식과 삶의 양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습관의 힘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습관이란 무엇인가? 나는 샤워를 먼저 하고 양치질을 하는데, 아내는 양치질을 먼저 하고 샤워를 한다. 흡연자는 식후 무심하게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다른 사람은 식후 반드시 커피를 마신다. “습관은 시간을 순서대로 배열하고 통합함으로써 생활 리듬과 양식을 만들어낸다.”(빌리 엔·오르바르 뢰프그렌) 습관은 시간을 가지런히 배열하고, 통합과 질서를 형성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 양식을 떠받치고, 그 리듬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산다는 건 크고 작은 습관의 발명 속에서 이루어진다.

습관은 삶에서 효율성을 키우는 합리적인 행동인가, 아니면 우리 의지를 거머쥐고 옥죄는 퇴영적 잔재인가? 습관은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몸에 밴 오랜 시간의 자취다. 동시에 불확실성과 선택에 따르는 감정 소모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는 행동의 연속체다. 습관은 몸에 새겨진 생활 리듬이고, 무의식에 각인된 행동의 패턴으로 우리 삶을 빚고, 한 사회의 규칙과 통념을 빚는 동력이다. 그것은 예측가능한 개인의 행동 양식을 넘어서서 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을 지배하는 집단적인 문화 양식으로 굳어진다. 습관이 외부의 요인으로 중단된다면 개별자의 생활 리듬과 양식은 뒤틀리고 균열이 생긴다. 우리는 반복과 일탈의 자장(磁場) 사이에서 양면성을 품고 진자 운동을 하는 습관을 이어간다.

내전이나 테러, 전염병의 대유행 같은 사태는 삶의 리듬을 만드는 시간의 배열이나 익숙한 습관이 작동하는 기반을 무너뜨린다. 우리의 습관은 비상사태 속에서 너무 쉽게 무너지거나 사라진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 삶의 안녕을 받치는 토대가 뒤틀리고, 일상의 리듬을 낳는 시간의 배열이 흩어진 탓이다. 습관이 메시아는 아니지만, 우리는 습관이 사라진 낯선 상황에 당황하고 허둥지둥할지도 모른다. 일상의 습관 속에서 평화가 담보되는 나날에서 멀어지는 낯선 상황은 잦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최근에 짜증이 늘고 신경이 부쩍 예민해졌다면 다 영혼을 잠식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그 원인일 테다.

습관은 변화와 유동이 커진 현대 사회에서 잘 살기 위해 인간이 발명한 행동의 DNA일 수도 있다. 습관의 안정적인 연쇄가 깨진 상태에서 낯선 사람을 전염병균의 보균자인 듯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지금 상황은 더도 덜도 아닌 삶의 위기다. 개인이건 사회건 위기의 징후는 일상의 습관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의 유동성이 커질 때 발생한다. 이 위기를 넘어서는데, 공동체의 내부에서 관용, 인내, 환대와 같은 사회적 덕목을 발현시키는 착한 습관의 힘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는 바이러스 감염증이 번져가는 도시의 주민을 도우러 달려가고, 누군가는 질병 퇴치를 위해 쓰라고 통 크게 기부를 한다. 이게 다 개인의 내면에서 길러진 좋은 습관의 힘이다. 우리는 언제 일상의 안정과 평화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과 만나 악수를 하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일상의 안녕과 평온을 만끽하는 나날이 그리워진다.

 

장석주 시인·인문학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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