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서양이 반한 고려인삼… 왜 역사 흔적 없나

입력 : 2020-02-29 03:00:00 수정 : 2020-02-28 21:13:0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7세기 첫 한류상품 유럽 사로잡아 / “가장 귀한 약… 죽은 사람도 살려내” / 당시 英 동인도회사 상관원 설명 / 유효성분 추출 못하고 서구화 실패 / 18세기 들어 의학적인 가치 폄하 / 저자, 보고서·지리지 등 자료 추적 / 서양서 사라진 인삼의 존재 복원
설혜심/휴머니스트/2만5000원

인삼의 세계사/설혜심/휴머니스트/2만5000원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식품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인삼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탕과 술 같은 음식에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고급 약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인삼을 먹어왔다. 요즘도 한류 붐을 타고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우리 인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고려인삼이 유럽에 첫발을 내딛고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1617년이므로 ‘최초의 한류 상품’이라 할 만하다. 인삼은 커피, 사탕수수, 면화 등과 함께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17세기 거대한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을 차지했던 세계상품임이 우리의 각종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양 역사에서 인삼의 흔적은 제대로 찾아볼 수 없다. 이 점에 의문을 품고 인삼을 연구하기 시작한 서양사학자 설혜심 교수가 쓴 책이 바로 ‘인삼의 세계사’다. 의학 논고부터 약전, 동인도회사 보고서, 경제학 논고, 식물학서, 지리지, 여행기, 박물지, 신문 기사, 서신, 사전, 소설, 시,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뒤져 책을 냈다.

저자는 동아시아에 파견된 예수회 신부들이 인삼을 직접 경험하고 쓴 보고서와 중상주의 기치 아래 인삼 연구에 매진한 유럽 지식인들의 논문들, 철학자 존 로크의 기록과 라이프니츠가 인삼의 효능에 대해 질문한 편지들, 실제 인삼을 치료에 사용한 의사들의 임상 사례 등 흥미로운 기록들을 찾아 17∼18세기까지 인삼이 서양지식체계에 편입되는 과정을 살핀다.

프랑스 출신 예수회 신부 자르투가 1711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실린 인삼 그림. 자르투의 보고서는 서양에 처음으로 고려인삼의 산지를 확인해준 사례로 평가된다. 휴머니스트 제공

책으로 들어가 보자. 고려인삼이 서양과 만난 첫 기록은 1617년 일본 주재 영국 동인도회사의 상관원이 런던의 본사에 인삼과 함께 보낸 통신문이다. 상관원은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낸다”며 “가장 귀한 약으로 간주하며 죽은 사람도 살려내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일본, 남아프리카(희망봉)를 거쳐 런던에 도착한 인삼의 여정은 인삼이 ‘대항해시대’ 결과물이었음을 오롯이 보여주는 사례다.

1736년 2월 9일 파리 의과대학에서는 유럽 최초로 인삼을 주제로 작성된 박사학위 논문의 심사가 열렸다. 뤼카 오귀스탱 폴리오 드 생바스가 쓴 논문의 제목은 ‘인삼, 병자들에게 강장제 역할을 하는가?’였다. 그는 인삼이 질병의 치료뿐 아니라 건강을 점진적으로 증진하는 식품으로서의 특징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 서구의 신문 기사에서 한국 관련 기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영국도 한국에 큰 관심을 보이는데, 이는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된 탓이다. 한국은 영국이 향후 무역 대상으로 고려해야 할, 아시아에서 새로이 ‘발견되고 있는’ 국가로 조명됐다. 인삼은 당시 한국에 대한 소개에서 정치, 경제, 지리, 문화와 더불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금과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으로 꼽혔다. 한국은 “아직은 대사나 군함을 파견할 필요는 없지만, 교역 잠재력이 큰 나라”로 “한국이 수출하는 주요 상품으로는 금과 인삼이 있다”는 식이었다.

책은 단순히 인삼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서양과 인삼의 불편한 관계를 예리한 시선으로 추적해 서구 문명이 인삼에 어떤 식으로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웠는지도 규명한다. 18세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서구 의학계에서는 인삼의 의학적 가치를 깎아내리고 약전(藥典)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 당시 인삼은 커피의 카페인이나 아편의 모르핀처럼 유효성분을 추출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그래서 인삼은 서양의 근대 약학 시스템에 더디게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양이 인삼의 생산과 수출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에도, 인삼을 ‘동양의 전유물’로 타자화하게 된 배경으로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인삼 가공 기술에 대한 열등감과 문화적 구별 짓기에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서양이 인삼에 동양성, 전제성, 사치, 방탕, 비합리성과 불가해성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며 주류 문화에서 인삼을 소외시켜 나간 과정을 파헤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