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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천재’서 스포츠 행정가로… “체육계 발전 위해 헌신”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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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22 21:00:00 수정 : 2020-02-22 17: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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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 초등 5∼6학년 때 전국대회 도맡아 우승 / 중3 땐 최연소 대표로 세계선수권 출전 /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에 자신감 / 2년후 결국 아테네올림픽 단식 금 환호/ 2016년 국내 2번째로 IOC선수위원 당선 / 평창동계올림픽 땐 선수촌장으로 활약 / 부산세계선수권 조직위공동위원장 맡아 / 서울·부산 수시로 오가며 성공 개최 온힘 / 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장 중 최연소 회장 / 목에 힘주지 않고 솔선수범 리더십 보여 / “항상 배우는 자세로 하나씩 습득하는 중 / 기회 되면 세계탁구연맹회장직에 도전”

2004 아테네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건 유승민은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라켓을 손에 쥐고 상대편을 매섭게 노려보던 눈빛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탁구천재’라고 불린 그는 지금 스포츠 행정가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해 가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가 현재 맡고 있는 굵직한 직책은 대한탁구협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2020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공동위원장이다.

당장 다음 달 22일부터 8일 동안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탁구 세계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수시로 오가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 개최하는 이 대회는 도쿄올림픽 전초전 성격으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계 탁구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1인3역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유 회장을 지난 15일 만났다.

그의 탁구인생은 8살 때 시작됐다. 하얀 탁구공을 라켓으로 쳐 넘기는 것이 재미있어서 발을 담갔다. 어린 아들이 탁구장만 가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땀 흘리며 집중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그를 탁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시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데다 탁구에 싫증을 내 본 적이 없어 자연스럽게 좋은 성적이 나왔었지요.” 초등학교 5∼6학년 때 전국대회에 나가면 도맡아 1등을 했다. 한 학년 위 선수와 시합을 많이 했지만 한 번도 패하지 않았을 만큼 독보적 실력을 자랑했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앞에는 ‘탁구천재’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붙었다.

당연히 ’탁구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3학년 재학시절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비록 본선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세계랭킹 61위를 기록해 ‘중학생 세계랭커’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국내 팬들은 그가 금메달을 딴 아테네 올림픽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유 회장 자신은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당시 혼합복식과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땄고,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거머쥐며 올림픽에 나가서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국내 팬들 앞에서 금메달을 따고 나자 올림픽 금메달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안게임 때 나온 경기력 상승세가 아테네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맞붙은 중국 선수 왕하오는 지금도 반갑게 만나는 사이다. 그는 왕하오를 고등학교 2학년 때 출전한 1999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나 한 차례 꺾었다. 하지만 2년의 공백기를 갖고 성인대회에 나온 왕하오는 달랐다. 붙기만 하면 패할 정도로 실력이 월등했다. 왕하오와 좁혀질 것 같지 않던 실력차이는 아테네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이기는 세트가 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조금만 더 준비하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테네올림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지난 15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음 달 22일 국내 처음으로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탁수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내 탁구붐을 일으키고 싶다”는 등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탁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마지막으로 25년 선수 및 코치생활을 마감한 그는 2016년 8월 IOC선수위원에, 지난해 6월에는 대한탁구협회장에 각각 당선되면서 스포츠 행정가라는 미지의 길을 걷고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열정으로 하루하루 도전하고 있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던 만큼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 또한 애틋하다. 그는 선수촌과 대회 경기장에서 만나는 후배 선수들에게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권유한다. 같은 종목 선수들끼리 뭉쳐다니며 밥 먹지 말고 타 종목 선수들과 어울리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는 현역시절 선수촌 마당발로 통했다. 훈련이 끝나면 다른 종목 선수들과 사우나를 가거나 방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대인관계를 폭넓게 맺었다. 국내는 물론 외국 선수들과도 어울리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아테네 올림픽은 물론 2008년 열린 제29회 베이징올림픽 등 자신이 출전했던 대회의 선수들과는 지금도 격의 없이 연락하고 있을 정도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그가 IOC선수위원에 도전하는 밑바탕이 됐다. 그는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로 2008년부터 8년 동안 IOC선수위원을 지내고 국회의원까지 했던 문대성과 친형제처럼 지낸다. 문 전 위원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IOC 위원의 꿈을 키웠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 기회가 오면 꼭 도전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2015년 8월 그는 사격 진종오, 역도 장미란을 제치고 IOC선수위원 대한민국 최종 후보가 됐으며 다음해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때 치른 선수위원 투표에서 후보자 23명 중 2위를 차지했다. 국내 두 번째 IOC 선수위원이 된 것이다. 국내 후보자 면접날 그는 독일 등 외국에 있는 선수출신 친구들로부터 추천장을 받아 면접관에게 제출하는 열정을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본 면접이었지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임했다. ‘살면서 언제 면접을 또 보겠나’ ‘떨어져도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면접장에 가서 포부를 밝혔다.

IOC 위원 임기 8년 중 절반을 보낸 그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때 선수촌장을 맡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2024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힘을 보탰다. 선수촌장 때는 국내외 출전선수단을 챙기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느라 한 달 동안 5㎏이 빠질 정도로 전력했다. “하계 종목 선수 출신으로서 동계올림픽 선수촌장을 무리없이 소화하기 위해 동계 종목 관련 공부를 열심히 해 박사가 되다시피 했습니다.”(웃음)

선수들이 은퇴 후 성공적으로 경력 전환을 위한 IOC선수경력프로그램 워크숍을 열어 진로고민을 나누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IOC위원으로 그가 이뤄낸 결과물이다. 직접 강사로 나서 현역시절 장래를 고민한 경험담을 들려주며 후배들을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또 탁구 혼합복식 종목을 신설해, 올해 도쿄올림픽부터는 탁구 금메달이 4개에서 5개로 늘어났다. 혼합복식은 나라마다 1개 조만 출전할 수 있어 한 나라가 금·은·동메달을 싹쓸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만큼 메달을 딸 확률이 높아 나라마다 전략종목으로 꼽는다고. 유 회장은 남은 임기 동안 IOC 내에 선수와 지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3월에 열리는 부산세계탁수선수권대회는 그가 선수이미지를 벗어내고 스포츠 행정가로서 리더십을 인정받을 기회다. “세계 탁구인의 기억에 남는 대회로 개최해 추진력과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도록 꼼꼼하게 챙기고 있어요.” 이번 선수권대회는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탁구협회 부회장으로 있을 때 유치를 한 데다 회장 자격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어서 성공대회로 자리매김시키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76개국에서 6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하고 대회기간 동안 국제탁구연맹 총회가 열려 전 세계 탁구인들에게는 한마당 축제장으로 인식될 정도로 중요한 행사다.

대한탁구협회장을 맡고 있지만 목에 힘주는 대신 현장에서 직접 일을 챙기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탁구협회를 이끌어가는 임원들이 모두 연장자이다 보니 실무자처럼 일을 하고 있어 스스로 ‘인턴회장’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때도 있다. 경험 많은 부회장단과 임원들이 힘을 합쳐 일을 추진하면서 경험부족에서 올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는 현장에 나가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에서 1∼2년만 떨어져 있어도 트렌드와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갈 수 없어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는 이유를 대면서다.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장 중 최연소인 그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하나씩 습득해 가고 있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국가와 체육계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기회가 되면 세계탁구연맹회장 도전도 꿈꾼다. 그래서 더욱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 “IOC위원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대한탁구협회장 또한 평소 차근차근 마음속에 꿈을 심어 두었기 때문에 실현됐다고 보거든요.” 그가 시간을 쪼개가며 국내외를 누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조언해주는 지인들도 큰 힘이 된다. 유 회장은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남다른 체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다만 가족들에게 미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바쁜 일정 때문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해 아내와 두 아들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따라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곁에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탁구천재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거쳐 스포츠 행정가로 세계 무대를 향해 차근차근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또 한 번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박수받는 ‘유승민의 꿈’이 기대된다.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유승민은…? 

 

△1982년 경기 부천 출생 △동남고, 경기대 체육학 학사·석사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복식 금메달, 단체전·혼합복식 은메달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단식 금메달 △2008년 제29회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2012년 제30회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4년 국가대표탁구팀 코치 △2016년 IOC 선수위원 △2017년 대한탁구협회 이사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평창선수촌장 △2019년 6월 대한탁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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