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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앞두고 멈춰선 北核협상… 대화와 도발 사이 ‘기싸움’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입력 : 2020-02-22 19:00:00 수정 : 2020-02-22 11: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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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국제사회 정세는 / ①교착상태 빠진 北·美 관계 / 2년 동안 3차례 북·미 정상회담 개최 / 친서 교환·톱다운 방식 협상했지만 / 실무진간 협상 선행 안 돼 성과 못내 / 2019년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 美측 협상재개 요구 北 무응답 일관 / 美조야선 “北 고강도 도발 재개” 전망 / 트럼프, 11월 대선에 역량 총집중 / 승리 경우 비핵화 대화 나설지 관심 / 정권 바뀔땐 관계 재설정 불가피할 듯
2020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북·미 관계는 얼어붙어 있다. 지난해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이 북한의 일방적 결렬 선언으로 끝난 뒤 미측의 협상재개 요구에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한 결과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미 관계는 북한의 도발과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응, 대화와 타협, 도발 재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부침을 거듭해 왔다. 현재 북·미 관계는 대화와 도발 재개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 있다.

 

북·미 간 긴장은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 1차 핵위기가 촉발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미국의 영변핵시설 폭격설과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고조된 갈등은 1994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북·미 간 제네바 합의가 도출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대북특사가 방북했을 때 북한이 핵개발 의혹을 간접 시인해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면서 2차 핵위기가 왔다.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이래 2017년 9월까지 무려 여섯 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때마다 군사적 대응이 거론됐지만 다행히 시행된 적은 없다. 북한의 도발 등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를 반복했지만 미국은 줄곧 대화와 타협을 주도해왔다.

◆北 도발과 대화·합의, 파행의 쳇바퀴

미국은 북·미회담과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한과 여러 굵직한 합의를 이뤘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제네바 합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시인 2005년 ‘2차 북핵위기’ 때 6자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과 2007년 이를 실행하기 위한 2·13 합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 2·29 합의 등이다.

빌 클린턴(왼쪽), 김정일.

대부분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 등의 목표가 제시됐고, 미국이 식량과 에너지 등을 북한에 지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북한은 결정적인 순간에 핵 프로그램 신고나 국제사회의 사찰 등을 거부하거나 미사일 도발을 재개하면서 합의를 깨뜨렸다.

클린턴 행정부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하고 영변 핵 시설의 원자로를 봉인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지만,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 계획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나며 빛이 바랬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말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고 대북 강경 노선을 펼쳤고, 그해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간접 시인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2·29 합의 당시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과 미국의 대북 24만t 식량 지원을 맞바꾸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이 채 한 달도 안 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합의는 깨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지난 25년간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제공했을 뿐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 전임 행정부들의 대북정책을 싸잡아 비판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전임 정부가 25년간 북한과의 합의 대가 등으로 지원한 식량과 에너지 규모가 13억5000만달러(약 1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CRS도 미국이 1995∼2008년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 명목으로 약 13억달러를 지출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성과를 강조하면서도 (이번 정부는) 북한에 제공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美 전직 대통령들의 방북, 3차례 北·美 정상회담 그리고 ‘친서 외교’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2개월여 만에 ‘최대 압박과 관여’를 골자로 한 대북 원칙을 수립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가한다’,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추진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등 4대 대북정책안을 내놨다. 군사옵션이 제외된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시험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말 폭탄’,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했다. 미군 전략폭격기 B-1B가 비무장지대(DMZ) 최북단까지 출격하는 등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고, 미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에서 연일 ‘군사 옵션’이 흘러나왔다.

북한이 작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TV가 1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미정책과 전략무기 개발을 언급한 대목에서 나온 사진으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과거 열병식 때 등장한 무기다. 연합뉴스

다행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 등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관계가 교착상황에 빠질 때마다 김 위원장과 친서를 교환하면서 친밀감을 과시했고, 두 정상 간 ‘톱다운식’ 협상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솔루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대해 전통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꺼리는 다른 공화당 대통령들과 다르다는 평가와 함께 실무협상이 선행되지 않은 정상회담은 비핵화 성과를 얻기보다 북한이 원하는 정상국가의 지위만 넘겨주게 된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앞서 지미 카터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북·미 정상회담과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 추진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민주당인 카터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대신 퇴임 후 북·미관계가 악화일로일 때 방북해 양국 간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방북해 제네바 합의 마련에 기여했고,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9년 8월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석방 교섭을 위해 방북했다.

지난 1994년 6월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왼쪽)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북한 주석(왼쪽)과 만났다. 김일성 주석은 그 후 불과 몇 주 후에 사망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0년 대선을 앞둔 현재 북·미 관계는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 및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멈춘 것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이 미국 대선 전에 고강도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대선 결과에 따라서 북·미 관계가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지는 물론 또다시 북·미 간 대화에 몰두할지, 새 대통령이 북·미 관계의 변화를 꾀할지는 올해 11월 대선 이후에 확인될 전망이다.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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