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강경화’ 주목받는 최지은의 또 다른 이름 ‘꿈꾸는 IMF키즈’ [여의도 인물탐구]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 최지은(40)은 여야를 막론하고 21대 총선 영입인재 중 단연 최고의 기대주다. 미국 하버드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아프리카개발은행, 세계은행에서 활동한 그의 이력은 누가 봐도 화려하다. 하지만 그가 기대주인 이유는 젊은 나이에 국제무대에서 이룬 성공이나 스펙 때문만이 아니다. 최지은은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평범한 스토리, 특별한 성공담이 아니라 80년대생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보편성에 더 눈이 가는 ‘반전’의 인물이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그를 만났다.

◆‘IMF키즈’, 정치에 들어서다

지난 달 16일 최지은이 더불어민주당 아홉 번째 영입인재로 소개되던 날, 그가 읽어 내려간 A4용지 두장짜리 회견문에는 IMF가 등장한다. “IMF때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해 가족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제가 열심히 사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집안의 경제적 도움 없이, 콩글리시를 구사하는 토종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민주당 영입인재 9호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최지은 박사. 뉴시스

IMF는 80년대생들의 학창시절을 규정하는 집단경험이다. 국제기구에서의 자기만의 독보적 성취 못지 않게 자신의 세대를 설명하는 키워드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 최지은의 자기소개는 새로운 한 세대의 보편적 경험을 기성정치에 반영시키고, 자신의 세대와 공감하는 정치를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그는 자신의 세대가 기성 정치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정치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풀어놨다.

그는 자신의 세대가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세대”라고 말했다.

“우리 세대가 어떤 세대일까 생각해보면, 베이비붐으로 엄청난 경쟁에 시달렸고, IMF로 부모님의 도산과 실직, 자신의 취업난을 겪었어요. 비운동권이 주류였지만 월드컵, 촛불 등 필요하면 뭉칠 줄 알고 또 즐겁게 뭉쳐서 이기는 경험을 해봤죠. 86세대처럼 거리에서 뭉치지 않았지만 큰 일이 있을 때면 인터넷을 통해 뭉쳤던 거예요. 배낭여행 첫 세대, 개인 중시, 수평적이고 자유분방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세대가 직장에서 치이고 가정에서 아이 키우며 살기 한창 바쁘니 정치에서 밀려나있는 측면이 있는데, 그럼에도 생활에서 교육, 주거, 납세 등 모든 영역에서 정치와 가장 관계가 깊은 시기를 지나고 있어요. 우리를 잘 대표할 수 있는 정치가 꼭 필요하단 것도 알고 있고요.”

그는 자신의 세대를 ‘대표’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접점’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제가 있던 워싱턴에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꿈나무가 많고 그 친구들이 대학생이건 누구건 정치를 해야겠다 결심하면 어디에서 시작해서 뭘 해야할지 커리어 코스를 다 알아요. 우리 세대를 비롯해 한국의 청년들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죠. 그만큼 다가가기 힘들고요. 문턱도 있고 혐오도 있죠. 하지만 그걸 극복해야 우리 세대도, 또 정치적으로 목소리 없던 집단들이 포용되는 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특정 세대가 과잉대표, 과소대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보고요. 전 정당이 우리 세대와 더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접점이 되고 싶어요.”

IMF키즈, 여성, 싱글 등, 그는 여러 범주에서 한국사회에서 과소대표되면서도 정치적 대표성을 부여함에 있어 가장 논쟁적인 그룹에 속한다. 잘나가던 국제기구 전문가 생활을 접고 여의도 정치 입문이라는 인생의 큰 선택 앞에서 ‘오기’가 작동한 듯 했다.

“미국에서 몇차례 영입 제안 전화를 받은 뒤,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해서 상사나 가까운 몇분과 의논을 했어요. 미국인은 꼭 하라고 했고, 한국인은 말렸어요. 남자동료는 하라고 했고 여자동료는 하지 말라고 했고요. ‘아, 내가 ‘한국인 여자’구나, 그렇다면 오히려 더 해야겠다, 극복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아홉번째 영입인재인 최지은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에게 당원 교과서 등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87체제’ 이후, 대안을 위한 정치

그가 국제무대에서 쌓은 전문성을 어떻게 발휘할지도 관심이다. 87체제 이후 거대양당을 축으로 하는 국회의 ‘대립의 정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지식의 힘보다 진영 간 세대결, 대안제시보다 선명성이 점수를 땄기 때문이다. 선거법 개정으로 21대국회에서는 변화가 예상되면서, 최지은과 같은 전문가가 내놓을 대안이 국회를 협치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가령 그가 꿈꾸는 남북의 경제통합 비전은 기존 정치권의 문법과 상당히 다르다. 그는 영입 회견때, “남북간 평화의 밑바탕이 될 경제통합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남북, 북·미 간 정치적 관계가 지금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과연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었더니, 정치적 문제부터 해결하고 난 뒤 실무적인 준비에 들어간다는 순서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치적 갈등관계를 풀고 정치적 합의 결정을 다 내린 뒤 실무적인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국민이 통일이 싫다고 하면, 그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국민이 통일이 싫다는 이유가 통일비용때문이라면요? 거꾸로 실무적인 준비를 해나가면서 통일비용이 들지 않는 해법을 만들면 오히려 정치적 합의를 하기 쉬워지죠. 그래서 둘 다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그는 국제기구에서 구소련 국가들, 베트남, 중국 등 체제전환 국가의 기업을 민영화하고 무역을 개방하며 혁신 산업을 주입하는 등의 일을 해왔다.

“세계은행에서 여러 체제전환 국가들에 대한 자문을 맡았고, 저를 포함, 그 기구들에 노하우가 축적돼 있습니다. 그런 노하우를 북한에 줄 수 있고, 빌려줄 자금도 마련돼 있죠. 통일 비용이라는 게 한국과 북한의 소득수준이 크면 클수록 커지는 건데, 북한의 소득수준이 올라간다면요? 북한 경제를 개발하고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국제기구의 차관을 받게 하는 일에는 한국사람이 세금을 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일을 봐라, 통일비용이 막대하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우리는 독일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장벽을 무너뜨리는 통일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통일을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해나가느냐에 따라 비용과 이득이 달라집니다. 통일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고, 북한을 넘어 중국, 북방으로 뻗어나기기 위한 한국,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문제죠.” 구체적인 지식은 추상적인 이념대립의 쳇바퀴를 벗어나게 할지 모른다.

◆‘제2의 강경화’, 호랑이굴에 들어가다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능력과 국제무대 경력은 ‘제 2의 강경화’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당원들과의 행사에서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비교하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이 타이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강 장관을 알지 못하지만 국제기구에서 일한 한국인 여성으로서, 또 해외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선배로서 앞으로 공통점, 배울점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이미 뜻을 함께한 적이 있다. 그는 2017년 6월 강경화 유엔사무총장 특보가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됐을 때,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낸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월 16일 아홉번째 영입인사인 최지은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한국에서 반대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국제기구 내에서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고, 비영어권 국가의 여성으로서 얼마나 많은 편견의 장벽을 넘어 그 자리에 갔을지 충분히 추론할 수 있었어요. 국제적 네트워크는 우리나라의 외교현안을 생각했을 때 꼭필요한 자산이라고 봤고,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죠.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성명서를 제 SNS에 올렸어요. 출장가는 길이라 워싱턴 공항에서 올렸는데, 오스트리아 빈에 내려 확인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서명을 했더라고요. SNS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지구 반대편의 사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구나 깨달았고, 시민으로서도 즐거운 정치경험이었어요.” 당시 20개 가까운 세계 각지의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60여 명이 지지선언에 동참했다.

문재인정부에는 강 장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2차장 등 해외에서 일하다 고국의 정부로 돌아와 역할하는 이들이 있지만, 최지은처럼 국회로 직행한 경우는 없다. 국제기구 출신이 여의도 정치에서 얼마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아직 물음표다. 최지은의 세계은행 명함 뒤에는 ‘강력한 영향(impact), 진실성(integrity), 존중(respect), 팀워크(teamwork), 혁신(innovation)’이라는 세계은행 조직의 5대 핵심가치가 새겨져 있다. 시민들이 국회나 정당을 떠올릴 때 연상하는 이미지들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자기 자신도 처음에는 과연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몸살을 앓을 정도로 고민에 또 고민을 했고 걱정도 많았어요. 그런데 귀국한 뒤 제가 평소 갖고있던 문제의식을 꺼내놓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해외에 있었지만 한국사회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 많았는데, 가령 제가 생각하는 한국사회 문제는 기득권의 생산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 이야길 했더니 당원들께서 맞장구를 쳤어요. 국회로 들어가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니 그 의무감이 불안이나 두려움을 쫓아내더라고요.”

총선을 60여일 앞둔 요즘 함께 영입된 이들과 틈틈이 만나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정치 예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정치활동은 이미 시작된 게 분명했다. 마침 그를 만난 날, 한 신문이 최지은이 부산 강서을 지역구에 투입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그가 영입된 뒤 첫 정치 기사였다. 그의 전화기가 자꾸 울렸고 결정된 바 없다는 설명을 하느라 바빴다. 인터뷰를 마치고 국회를 빠져나가면서 생전 처음 하게 될 선거운동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궁금증을 쏟아냈다. 다음 행선지로 바삐 움직이는 의욕 넘치는 발걸음이 ‘최지은은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었다. 

김예진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