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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하급자도 가해자 될 수 있다"

입력 : 2019-07-17 16:18:42 수정 : 2019-07-18 01: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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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외국에서 자라 영어를 잘하는 직장인 A씨는 회사 선배들로부터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울러 이 사실을 비밀로 부치라고 지시했다.

 

이에 그는 업무 시간에 남몰래 회의실에서 선배 몇명을 앉혀 놓고 영어를 가르쳤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배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씨의 부담은 점점 커졌다. 400쪽이 넘는 영어 교재를 스캔하기도 했다.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는 게 다반사가 됐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B씨는 거래팀에서 보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느날 팀장이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내일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며 서류 작성을 지시했다.

 

B씨는 계약 담당자가 연차휴가 중인 탓에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정시 퇴근을 하고 가족과 외식을 할 계획이었던 그는 졸지에 야근을 하게 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틀째인 17일 이 같은 사례를 통해 판단 기준을 설명했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A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나, B씨는 안 된다.

 

두 사람 다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정해진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다만 A씨의 영어 교육은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B씨의 계약서류 작성은 정황으로 미뤄 ’업무상 적정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사적인 지시를 하거나 사생활에 관해 묻는 것도 원칙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직장인 C씨는 회사 선배로부터 술자리를 만들라는 반복적인 요구에 시달렸다.

 

선배는 ”아직 날짜를 못 잡았느냐”, ”사유서를 써라”, ”성과급의 30%는 선배 접대용이다” 등의 말로 압박했고, 실제로 술자리를 만들라는 지시 이행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말서를 쓰게 했다.

 

D씨는 직장 동료와 점심식사를 하던 중 ”최근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상사는 D씨와 마주치자 ”애인 생겼냐”, ”뭐하는 사람이냐” 등 연애에 관해 캐물었다.

 

먼저 C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사적 용무 지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D씨의 사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상사가 성적인 언동으로 볼 만한 짓궂은 질문을 한 것도 아닌 만큼 직장생활 중 발생하는 통상적인 행위로 볼 수 있어서다.

 

E씨의 상사는 일과가 끝난 밤중에 술에 취해 팀원들이 쓰는 모바일 메신저에 자기 사정을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곤 했다.

 

팀원들이 답을 안 하면 “왜 안 하느냐”는 문자를 올려 다그쳤다.

 

E씨의 사례는 퇴근 후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는 반드시 상급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등한 직급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관계의 우위를 이용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다.

 

하급자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업무 능력을 널리 인정받는 하급자가 사내 평가의 우위를 이용해 상급자의 지시를 사사건건 무시한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노동부 측은 이와 관련해 “상대방이 저항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큰 수준의 ’관계의 우위’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개정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 대응 조치를 해야 할 이는 사용자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이면 해결 방법이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대표이사가 행위자로 지목돼 피해자가 사내 정식 조사를 요구하면 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기업 내 감사나 외부 전문가 등이 조사하고,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는 별도 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진정을 접수한 지방 노동관서는 사업장의 법 위반 여부 등이 확인되면 일정 기간을 두고 개선 지도를 하게 된다. 사업장이 이마저 이행하지 않으면 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는 사내 사건 처리 결과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돼도 지방 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가해자도 사업주의 징계조치 등에 불만이 있으면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하면 된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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