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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증거의 한계… ‘제주판 살인의 추억’ 만들어

입력 : 2019-07-12 09:22:15 수정 : 2019-07-12 09: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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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미제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무죄 / 미세섬유·CCTV 등 증거 불인정 / 재판부 “피고인 범행 정황 있지만 / 합리적 의심 배제할 정도 아니다” / 17년 전 부산 다방 여종업원 살인 / “의혹 해소 안돼” 최종 무죄 선고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10년 전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내 권위 있는 법의학자와 프로파일러 등이 동원돼 동물 사체 실험과 미세섬유 증거 확보 등 실체적 진실을 향한 끈질긴 노력에도 무죄가 선고돼 경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보육교사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신청된 피의자 박모(49)씨가 지난 2018년 12월 21일 제주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려 법원을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정봉기)는 11일 강간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모(50)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대부분의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했는지를 밝히기 위한 미세섬유 증거, 피고인의 차량으로 보이는 택시가 녹화된 폐쇄회로(CC)TV 영상 등 모두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피고인 소유 청바지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의 적법성을 따졌다. 재판부는 “수사당국이 피고인이 거주한 모텔방을 압수수색해 피고인이 사건 당일 입고 있었던 청바지를 증거물로 입수했지만, 긴급을 요하는 사정이 없었음에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모텔방을 수색해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청바지에서 검출한 미세섬유증거 및 그 분석결과는 위법수집증거인 청바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거나 그 변형물 또는 청바지를 기초로 한 2차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택시 뒷좌석 바닥과 트렁크에서 피해자가 입고 있던 무스탕의 털과 유사한 동물털이 검출됐지만 무스탕 제조과정에서 동시에 여러 종류의 동물털이 사용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미세섬유증거 분석결과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와 접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강간살인죄와 같은 중대범죄 수사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법한 압수수색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었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당시 27·여)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로 남아있었다. 경찰은 2016년 2월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리면서 수사를 재개했다.

 

2002년 부산 강서구 바다에서 발견돼 다방 여종업원 시신이 담긴 마대자루. 부산경찰청 제공

한편 부산고법에서도 이날 이와 유사한 판결이 났다. 17년 전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하고 예·적금을 인출한 혐의로 1·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이 살인증거가 부족하다며 2심 법원으로 돌려보낸 4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문관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양모(48)씨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인 무기징역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 시신이 든 마대 자루를 함께 옮겼다는 피고인 동거녀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는 등 ‘대법원이 파기 환송한 이유’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2002년 5월 22일 다방 종업원 A(당시 22세)씨를 흉기로 협박, 통장을 빼앗아 예금 296만원을 인출하고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범행 15년 만인 2017년 구속기소가 됐다. 이 사건은 당시 부산 강서구 인근 기수지역 바닷가에서 손발이 묶인 채 마대 자루에 든 A씨 시신이 발견되면서 알려졌지만, 10여년간 미제사건으로 남았었다. 1·2심은 양씨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중대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이 있어서도 안 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부산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제주·부산=임성준·전상후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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