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주요 당국에서 발표한 전망치를 보면 우리 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달 9일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고,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약 2% 수준으로 내다봤다. 앞서 한국은행 역시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1.8% 안팎의 성장률을 제시하며 우리 경제의 회복 가능성을 점친 바 있다.
주요 국제기관의 전망도 이와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작년 9월 한국에 대한 중간전망에서 2025년 1.0%, 2026년 2.2%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 회복과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세계 평균에 부합하는 성장 경로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 초반으로, 비교적 안정세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5%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금융 시스템 불안이나 급격한 경기하강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성장 회복 전망이 체감 경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 안정에도 명목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실질금리는 여전히 플러스 구간에 머물러 있다. 덕분에 금융 안정에는 기여할 수 있게 됐지만, 가계와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을 단기간에 완화하기에는 부족한 조건이다.
이달 발표한 한은의 2026년 1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기준치(100)를 웃도는 수준으로 최근의 안도감을 반영하고 있으나, 경기전망 지수는 대체로 100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주체들이 최근의 지표 개선을 지속가능한 회복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특히 고금리 기조가 2022년 하반기 이후 약 3년 가까이 이어진 탓이 크다. 심리 개선은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거시지표의 개선이 가계와 기업의 실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구조적인 병목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병목이 단순한 경제괴리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는 회복국면에 진입했지만, 사회는 여전히 위기대응 모드에 머물러 있다. ‘성장과 안정’이라는 거시적 성과가 개인 삶의 안전,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 공동체에 대한 신뢰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즉 ‘회복하는 경제’와 ‘여전히 불안해하는 사회’라는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흐르는 셈이다.
2026년 한국 경제의 회복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제조업 수출과 설비투자다. 덕분에 제조업 생산지표는 개선 흐름을 보이지만, 이러한 경제회복 동력과 성장이 내수 서비스업이나 자영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과거보다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전체 취업자의 60% 이상이 종사하는 서비스업은 낮은 생산성과 제한적인 임금상승 구조에 머물러 있으며, 그 결과 성장률 회복에도 그 과실은 특정 산업에 집중되는 양극화 현상도 보인다.
가계의 체감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부채다.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721만원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2년 이후 역대 최대치다. 이는 민간소비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금리가 정점을 통과했음에도 누적된 원리금 상환 부담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계는 소비 확대보다 부채 상환과 저축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에 깔린 불안 요인은 비단 가계부채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청년층은 고용의 질과 주거 불안정 속에서 미래 설계를 유보하고 있고, 중·장년층은 자산 가격의 변동성과 부채 부담 탓에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계층별로 감당해야 할 위험의 불균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괴리가 누적될수록 사회는 경제회복 국면을 ‘기회’로 인식하지 않고 ‘불안의 재배치’로 보게 되는 것이다.
2026년 한국 경제의 핵심 과제는 성장률 수치를 얼마나 높이느냐보다, 거시지표의 회복이 가계소득과 고용안정, 소비 여력으로 이어지도록 전달경로의 병목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재교육과 직업 전환 지원, 고용 안전망의 고도화, 가계부채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정책 조합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숫자’와 일상 사이의 괴리는 더욱 굳어질 것이다.
경제회복은 단순히 통계상의 성장률과 물가 안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숫자로 나타난 회복이 가계의 소비 여력과 미래에 대한 신뢰로 전환될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회복이 사회적 안정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경제회복은 자칫 불안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최예린 UN SDGs 협회 선임연구원 unsdgs.yer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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