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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백제 타임캡슐’ 열렸다…실물 피리·목간 329점 무더기 출토 [뉴스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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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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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왕궁지 추정 부여 관북리서
삼국시대 관악기 실물 최초 확인
행정기록 등 적힌 목간 최다 출토
“백제 역사·궁중음악 복원 실마리”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의 역사를 품은 충남 부여 관북리에서 당시 인사기록과 재정 장부 등 국가 행정 문서를 비롯해 궁중음악의 단서가 될 관악기 실물이 대거 발견됐다.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이 많지 않아 ‘잃어버린 왕국’으로 불리던 백제사의 빈칸이 상당 부분 채워질 전망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부여군과 진행 중인 관북리 유적 제16차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 시기 목간 329점과 7세기 실물 관악기인 대나무 횡적(橫笛·가로 피리)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관북리 유적은 사비 왕궁지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곳이다.

1500년 전쯤 백제 궁중에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나무 횡적(가로 피리)이 충남 부여군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됐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1500년 전쯤 백제 궁중에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나무 횡적(가로 피리)이 충남 부여군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됐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과 백제 금동대향로 조각의 장식 문양으로만 남아있던 백제 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7세기를 통틀어 삼국시대 관악기 실물이 발견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몸통 일부가 부러진 채 발견된 횡적은 네 개의 구멍만 남아 납작하게 눌린 모습이었다. 남아있는 부분은 22.4㎝ 정도로 전체의 30% 정도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와 형태를 볼 때 국악 전통악기인 소금(小?)과 비슷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소가 해당 횡적을 복원한 결과 횡적은 여섯 개의 구멍을 가진 6지공 악기로, 소금보다는 한 음 반 정도 소리가 높다. 연구소 관계자는 “횡적은 백제 궁중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의미가 깊다”고 강조했다. 이 횡적은 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의 구덩이에서 출토됐는데, 인체 기생충 알이 함께 검출된 것으로 미뤄 조당에 딸린 화장실 시설에 버려져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백제가 538년 웅진(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한 직후인 6세기 중엽 제작된 목간 329점도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최대 수량이자 백제 사비기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편철 목간(같은 종류의 행정 문서를 끈으로 묶어 만든 목간)을 비롯해 인사기록과 재정 장부, 관등·관직이 적힌 목간과 삭설(재활용하기 위해 깎아낸 목간 표면 부스러기) 등은 1500년 전 백제의 국가 운영 방식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나무 횡적 재현품.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대나무 횡적 재현품.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아울러 사비도성의 행정구역인 5부(상·전·중·하·후부)를 기록한 목간, 방-군-성으로 이어지는 지방 행정체계 개편을 보여주는 목간 등도 발견됐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관등·관직 명칭(도독·여무·서인), 지방 행정단위 명칭(하서군·개비군·감라성·나라성·요비성 등)이 기록된 목간도 출토됐으며, 역법과 의약, 음악 등 당대의 전문 지식이 적힌 목간도 확인됐다.

 

황인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장은 “백제의 역사서가 남아 있지 않아 사비 백제 초기의 실제 모습은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며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백제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과 제도적 행정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던 고도화된 행정 국가였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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