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청, 한글 병기 재추진 논란
정치권력 따라 훼손·재구성 반복
역사맥락 없는 ‘취향’ 덧칠 안 돼
광화문! 서울의 중심이다. 서울 도심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 얽힌 사연도 이곳을 탐내는 세력도 많다.
얼마 전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하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겠다고 했고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여기에 동의했다고 한다. 2024년, 윤석열정부 시절에도 비슷한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에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627돌 세종대왕 나신 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 한글학회장 등 한글 관련 인사들이 참석한 기념식에서 광화문 현판을 한글 현판으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장이 반대하고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아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문화유산 보존에 최후의 보루여야 할 국가유산청장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하고 나선 것이다. 문체부 장관이야 한글 정책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관이라 그렇다손 치더라도 문화유산 정책을 떠맡은 국가유산청장의 반응이 놀랍기만 하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대한민국의 문화유산 원칙이 바뀐 셈이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해외 사례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장관이 한자와 만주 글자가 함께 쓰인 중국의 자금성 현판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 자금성의 주인이었던 청나라는 한족이 세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정복했던 만주족이다. 자금성은 원래 명이 만든 궁궐이지만 청이 명을 멸망시킨 후 차지해 청의 궁궐로 사용했기 때문에 자금성 현판에 한자와 만주 글자를 함께 쓴 것이다. 현판에 만주 글자를 쓴 것은 만주족이 한족을 정복했다는 과시이자 만주족의 우두머리인 칸이 한족과 만주족 모두의 황제라는 시각적 장치였다. 만주족 왕조로서는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했다. 청나라 시절 만주어는 지배 민족의 언어였다. 장관이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도 대통령에게 자금성 현판을 적절한 사례로 보고했다면 역사적인 맥락을 무시한 ‘거짓 보고’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식한 보고’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문화유산을 국가에서 보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왜 굳이 ‘철 지난’ 경복궁을 복원하고,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지난 시절의 창덕궁과 종묘를 보존할까. 관광을 위해서? 나라의 체면 때문에? 이런 것은 그저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다. 문화유산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집단 기억’의 물질적 실체이자 역사의 증언이요 대한민국 정체성의 바탕이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이 주동이 되어 중건했다. 그러나 270년 이상 기다려 복구한 경복궁의 영광은 너무나 짧았다.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즉시 ‘구태를 일소한다’라면서 경복궁의 전각 대부분을 공매하고 빈 땅으로 만든 다음 1915년 이곳에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박람회를 개최했다. 조선 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자축 행사였다. 이를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내내 경복궁은 일본 제국주의의 선전장이 되었다. 일제는 1926년 경복궁 안마당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고 그 앞에 있던 광화문을 경복궁 동쪽 궁장으로 옮겼다. 이는 한반도의 지배자가 일본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도심 풍광의 조작이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은 광화문을 다시 세우고 본인의 한글 글씨로 현판을 달았다. 광화문 한글 현판의 아이디어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니 한글 광화문 현판의 ‘원조’인 셈이다. 박정희가 세운 광화문은 원래의 자리가 아니고 당시 ‘중앙청’이란 이름으로 정부 청사로 쓰고 있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정문 자리였다. 또, 새로 만든 광화문은 전통 목구조가 아니라 철근콘크리트 구조였고 부재의 크기도 조금씩 키웠는데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었다. 1966년 광화문 복원 준공식에서 박 대통령은 “앞으로 문화재 복원은 콘크리트로 하여 천 년 동안 견딜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박정희의 한글 현판을 단 철근콘크리트 광화문은 경복궁 복원 계획에 의해 철거되고, 2010년 원래의 자리에 원래의 구조와 모습으로 광화문이 다시 세워졌다. 그 후 몇 차례의 고증을 거쳐 조선시대 모습을 한 현재의 현판이 복원되었다. 그리고 2023년에는 광화문 월대까지 복원되었다.
광화문 앞은 원래 ‘육조거리’라 하여 조선의 육조를 비롯한 관아가 양옆으로 자리했던 곳이라 텅 빈 거리였다. 빈 광장에 처음 자리를 차지한 것은 1968년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동상 설립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이순신 장군 성역화 사업의 일환이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 대통령은 정통성이 취약했기 때문에 외적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을 부각함으로써 그 이미지가 군인 출신인 자신에게 투영되기를 바랐다. 그다음으로 광화문 광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사람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오 시장은 2009년 엄청난 크기의 세종대왕 동상을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세종대로의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 모신다는 명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비어 있어야 할 광장이 점점 권력자의 취향에 맞추어 채워졌다. 오 시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4년에는 100m 높이의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이제는 6·25전쟁 참전국을 상징하는 22개의 화강암 기둥을 세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명분이 무엇이든 이런 식이라면 광화문 광장은 권력자의 ‘취향 전시장’이 될 것이다.
광화문 한글 현판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역사성이 ‘1도 없는’ 한글 현판을 세종대왕을 내세워 훈민정음체로 달겠다는 발상 말이다. 깨알만큼이라도 역사성이 있는 것은 차라리 박정희의 한글 현판일지도 모른다. 제발 ‘옛날에 그러했던 것’에 권력자의 취향을 덧칠하지 말았으면 한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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