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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한양도성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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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12 23:32:17 수정 : 2026-01-12 23: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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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방어 담당했던 문화유산
옛사람들의 사상·신념 깃들어
새로 쌓은 성벽에 ‘진짜’는 줄어
남아 있는 것 제대로 보존해야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휩쓸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보고, 새해에는 인왕산에 올라 한양도성을 걸어 보며 옛사람의 생각을 떠올려 본다.

산에서 내려와 서울 도심을 걸으면서는 ‘서울만큼 독특한 도시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숭례문을 지나 북쪽으로 세종로를 따라가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면 갑자기 눈앞에서 서울의 현대 도시 풍경과 대비되는 웅장한 자연을 마주하게 된다. 정면에는 북악산이 좌측에는 인왕산이 서울을 지키는 근육이라도 되는 양 울뚝불뚝 커다란 바위를 여기저기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다 남쪽에는 목멱산이 서쪽에는 낙산이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조선시대 한양의 모양을 보여준다. 이들 산에는 한양도성이 빙 둘러 있었고 그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다. 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이 있었다. 남대문인 숭례문과 동대문인 흥인지문이 서울 도심의 랜드마크로 남아 있다. 북문인 숙정문은 1928년 문루가 철거되었다가 1975년 복원되었고 서대문인 돈의문은 1915년 철거되었다. 4소문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북서쪽에 있는 창의문이 유일하다. 북동쪽의 혜화문과 남동쪽의 광희문은 1928년과 1908년 각각 철거된 것을 1990년대에 복원했지만 원위치가 아니고, 남서쪽의 소의문은 1914년 철거되었다. 모두 도시가 팽창하면서 생긴 결과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한양 방어를 담당했던 도성은 이제 문화유산으로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옛사람들의 사상과 신념 체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숭례문의 현판 글씨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쓴 다른 문과는 달리 세로로 썼다. 한양의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불기운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불은 불로써 맞불을 놓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숭(崇)’ 자는 불이 타오르는 형상이고 ‘례(禮)’ 자는 음양오행에서 불을 뜻해 세로로 쓴 ‘숭례’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이 된다. 이와 더불어, 숭례문 앞에는 ‘남지’라 불리는 연못을 파 화기를 누르고자 했다. 그런데도 2008년 숭례문이 방화로 불탄 것을 어찌 봐야 할까. 좋게 보면,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전란에도 불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 것이 세로로 쓴 현판 덕이라 할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남지를 메운 게 2008년의 화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해몽하기 나름이다.

숙정문은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이라 불리던 다른 방향의 문과는 달리 ‘북문’이라고만 했다. 북쪽은 음양오행에서 음(陰)을 가리키니 ‘대문’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뭄이 심하면 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때 숭례문을 닫고 평소에는 항상 닫아두는 숙정문을 열었다. 음양오행에서 남쪽은 양(陽)을 북쪽은 음을 가리키고, 가뭄은 양기가 너무 왕성해 일어나는 현상이라 양기를 누르고 정체된 음기를 흐르게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조선왕조실록 명종 12년 7월 17일 기사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예조가 아뢰기를, ‘날씨가 가물면 남문은 닫고 북문을 열며 북 치는 것을 금하는 것은 음을 부지(扶持)시키고 양을 억제하는 뜻입니다. 지금 가뭄 끝에 장마가 개지 않아서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으니, 전례에 따라 숙정문을 닫고 숭례문을 여소서.’ 하니, 그대로 윤허하였다.” 북이나 종을 치는 것은 양기를 북돋우는 행위로 간주했다.

‘흥인지문’은 본래 ‘흥인문’이었는데 한양의 서쪽을 에워싼 낙산의 산세가 동쪽의 인왕산에 비해 너무 낮아 ‘갈 지(之)자’를 추가해 이를 보완하고자 했다. 풍수상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이 우백호인 인왕산에 비해 산세가 강해야 하는데 반대이기 때문이다. 한양도성의 4대문과 4소문 중 흥인지문에만 성문을 바깥에서 둥글게 감싸는 옹성이 있다. 성문은 평시에는 출입을 위해 필요하지만, 적의 공격에 취약한 부분이라 유사시 성문으로 쇄도하는 적을 동그랗게 둘러싸서 제압하기 위해 옹성을 쌓는다. 성종 10년(1479) 숭례문 수리 때 숭례문에도 옹성을 쌓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조선왕조실록 성종 10년 1월 17일 기사에 보인다. “… 만약 옹성을 쌓게 되면 마땅히 민가를 헐어야 하니, 빈궁한 자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도적이 이 문에 이른다면 이 나라가 나라의 구실을 못 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니 쌓지 말라.”

한양도성을 따라 걷다 보면 여기저기 위험하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성벽이 무너졌거나 무너질 위험이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꽤 오래전부터 이미 유실되었거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아오고 있다. 그런데 도성은 원래 적의 침략으로부터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험준한 지형에 성벽을 쌓은 까닭에 조금만 무너져도 복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조선시대 성벽을 지금 새로 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유산이란 남아 있는 것이지 옛것을 흉내 내서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에 복원한 부분이 무너진 것을 복구하는 것도 그렇고, 원래의 성벽이 무너져 다시 쌓으려면 멀쩡한 부분을 불가피하게 훼손하게 된다. ‘진짜’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소리다. ‘진짜를 진짜로’ 보존하려면 무너진 성벽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게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으로 그쳐야 하지 않을까. 자꾸 새로 쌓다 보면 전부 가짜로 보이기 십상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는 한양도성처럼 새로 쌓은, 또 새로 쌓을 산성이 많다. 이제 가짜 유산은 그만 만들고 남아 있는 것을 제대로 보존하는 데 힘썼으면 하는 바람을 새해 한양도성에서 해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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