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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미술사의 산증인’ 송미경 학예사, 30년 기록의 시간

입력 : 2025-12-21 17:03:11 수정 : 2025-12-21 20:27:24
대전=글∙사진 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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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산수화가의 거목 조평휘(93), 교회 조각의 대가 최종태(93), 금강의 화가 정명희(80), 서양화가 임봉재(92), 도예가 이종수(1935-2008)…. 

 

대전 미술계를 넘어 한국 미술사의 거장이 된 작가 이름이 끊임없이 줄줄 나온다. 작가들과의 인연, 미술전 준비작업과 뒷 이야기를 쏟아내는 입은 쉼이 없다. 머릿 속에 영사기(映寫機)가 있나 싶을 정도로 대전미술사를 연작 영화처럼 들려주는 이는 송미경(60)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이다. 

송미경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가 아카이브보관소에서 자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강은선 기자

대전지역 1세대 학예사이자 대전시립미술관 개관 직원인 송 학예사는 ‘대전미술사의 산증인’이다.

 

송 학예사는 2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역 작가를 발굴하고 지역미술사를 기록하는 건 한국미술사를 쓴다는 것”이라며 “지역 미술관은 미술사를 더 자세히 보는 ‘돋보기’”라고 말했다. 

 

그의 기록 덕분에 1998년 네번째 공립미술관으로 문을 연 대전시립미술관은 지역 공립미술관 중 가장 많은 미술사료를 갖고 있다. 현재 대전시립미술관은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전∙충남 미술사료 1만여건이 넘게 보관돼있다.  

 

미술관을 단순 미술품을 보고 감상하는 유희의 공간에서 ‘자원과 지식의 공유지’로의 기틀을 쌓은 건 송 학예사다. 

 

자료가 넘치는 한국미술과 달리 대전미술은 정리된 게 없었다. 

 

그는 “대전시립미술관인데 지역미술사나 작품, 유물, 연구기능 등 미술관 존재 근거가 미약했다”며 “단체전과 달리 지역미술의 가치와 정체, 의미를 부여하는 기획전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송 학예사의 첫 대전미술기록은 2003년 이동훈(1903-1894) 작가의 탄생 100주년전이었다. 자료가 전무했기에 그는 무작정 지역신문사로 향했다. 

 

송 학예사는 “대전일보사로 가 열흘 넘게 1950년부터 1969년까지 신문을 뒤져 전시기록을 사진기로 찍어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대전미술사의 초석을 다진 이동훈 작가처럼 대전 출신 작가가 상당했다”며 “지역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넘어 아카이브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작가 뿐 아니라 가족, 미술협회, 국립현대미술관까지 시간만 나면 사람이든 지역이든 가리지 않고 만나고 다녔다. 

 

아카이브에 박차를 가했던 건 초대 대전시립미술관장이었던 임봉재 작가에게 자료를 받으면서다. 그가 서울대 재학 시절 썼던 노트, 1950년대 개인전 리플렛, 60년대 전시 개최 리플렛과 포스터, 학생 가르칠 때 그렸던 도안, 스케치가 대거 확보되면서 대전미술사의 기초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 때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하다. 

 

송 학예사는 “온 몸으로 감격했던 그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당시 전시 준비와 작품 구입, 교육, 공연까지 몸을 네 개로 나눠도 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매일 설렘으로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2004년엔 류근영 선생이 1980년 대전미술자료를 기증하고, 정명희 작가도 고서적 등 희귀 자료를 건네주는 등 아카이브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2008년 대전시립미술관 10주년 전시를 위해 당시까지 찾아낸 대전 작가만 100명이다. 

 

지역미술 사료집에 숨을 불어넣은 지역미술기록 전시는 아카이브가 어느 정도 구축된 2010년대 후반부터 시민들에 내보였다.   

 

2018년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대전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주요 그룹을 중심으로 ‘대전현대미술의 태동-시대정신’을 기획했다. 이듬해에는 미술관이 20년간 수집해 온 소장품을 대대적으로 선보인 ‘DMA 컬렉션’전을 3부작으로 열었다. 

 

1부는 1940년부터 1960년까지 대전미술의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검이블루(儉而不陋·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전, 주요 소장품을 연도별로 소개한 2부 ‘원더랜드 뮤지엄’전, 3부는 2018년 새롭게 수집한 소장품을 만나볼 수 있는 ‘형형색색’전이 마련됐다.  

 

미술관 사무실에 아카이브 자료실이 있으나 공간이 모자랄 정도이다. 연도별∙섹션별 분류 작업은 진행형이다. 

 

대전지역 대학에서 미술학을 전공한 송 학예사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공채로 뽑힌 학예사다. 당시 학예사를 공채로 뽑는 데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유일했다. 

 

이달 말 그는 29년3개월의 미술관 학예사로서 근무를 마친다. 

 

미술관 한 켠에는 대전 미술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 모니터가 있다. 시대별로 분류된 자료는 한 번의 손 터치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설명을 볼 수 있다. 송 학예사가 지난 30여년 간 몸으로 기록한 자료들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방대한 양으로 인해 대전미술집 사료집을 직접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 그는 “미술사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에 초석을 다졌다는 점에서 아쉬우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했다. 

 

대전미술사의 흔적을 좇았던 송 학예사는 이젠 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고 기록하려고 한다. 

 

“지난 30여년 간 대전시립미술관의 이름으로 일했어요. 학예사로 외길을 걸어온 저의 흔적은 어떻게 기록될 지 궁금하면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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