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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웅’의 이면… ‘보통사람’ 이순신을 만나다

입력 : 2025-12-02 06:00:00 수정 : 2025-12-01 19:13:04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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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광복 80주년
특별 전시 ‘우리들의 이순신’

국내외 유물 369점 역대급 전시
전란 속 남긴 임진장초·난중일기
지휘 철학·고뇌 등 오롯이 담겨

역사자료 기반 종합적 인물 조명
유홍준 관장 “이순신 생애 통해
어려움 이겨내려는 이들에 응원”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두 자루의 장검에 새겨진 문장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각인된 ‘충무공 이순신’의 초상을 압축한다. 430여년이 지났지만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고, 검집을 떠난 은빛은 적진을 노려보던 서슬 퍼런 장수의 안광을 떠올리게 한다. 7년 전란의 험한 세월 속에서 불패신화를 세우며 나라를 지킨 성웅(聖雄) 이순신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결기로 기억되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 뉴시스

◆인간 이순신

그러나 전장의 밤, 좁은 등잔불 아래에서 남긴 그의 글자는 승리의 보고가 아니라 가족을 떠난 이의 애통함과 죄책감이었다. 40대 후반이던 1593년 6월12일 그는 노모에게 나이 듦을 들키지 않으려 흰 머리를 뽑았다. “아침에 흰 머리카락 십여 가닥을 뽑았다. 희어지는 것을 어찌 꺼릴까.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종일 홀로 앉아 있었다.” 비가 내렸던 1594년 5월9일, 지휘관으로서의 절망감과 무거운 마음을 토로했다. “하루 종일 홀로 빈 정자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침침하여 취한 듯, 꿈속인 듯,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나 죄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고, 어머니에게 효를 하고자 했으나 어머니도 역시 돌아가셨구나. 천지에 어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랴, 일찍 죽느니만 못하다.” 1597년 4월19일 두 번째 백의종군에 나선 아들을 찾아 배에 오른 어머니가 눈을 감았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다시 바다로 나가야 했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쓴 일기인 ‘난중일기’ 친필본. 전시에 급하게 흘려 쓴 초서로, 지휘관으로서의 책임감과 고뇌 등이 기록돼 있다.

명량대첩 직후인 그해 10월 막내아들 면마저 전사했다. 편지 겉면의 ‘통곡’ 두 글자를 보자마자 “간담이 떨어졌던” 그는 부하들 눈을 피해 외딴 소금 굽는 집에 숨은 후에야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하늘의 재앙이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중략) 잠시 견디며 목숨을 겨우겨우 이어가겠지만, 마음은 죽었고 껍질만 남았구나. 목 놓아 서럽게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1년 같다. 이날 밤, 10시에 비가 내렸다.”

‘난중일기’가 내면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면, ‘임진장초’는 임금에게 전쟁의 경과를 정리해 올린 공문서였다. 전사자와 부상자를 기리고, 군법을 어긴 자는 신분을 불문하고 엄격히 처벌하며, 포로가 된 백성을 구출하고자 했던 리더 이순신의 지휘 철학이 뚜렷이 담겼다.

이처럼 ‘큰 칼 옆에 차고’ 전쟁터를 호령하던 영웅의 이름 뒤편에는, “가슴에 품은 생각이 만 갈래”였던 인간 이순신이 있었다. 그에게 전장은 두려움과 회한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본분을 지키기 위해 끝내 견뎌야 했던 자리였다.

 

◆우리들의 이순신

인간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가 열렸다. 광복 80주년, 충무공 탄신 48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8일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동안 영화나 소설, 드라마 등으로 수없이 가공돼 온 이순신이 아닌, 역사가 기록한 유물로 그의 삶을 담담히 더듬는다. 전쟁의 기록부터 인간 이순신의 내면과 감정, 그의 사후 조선·근대·현대에 걸쳐 시대가 만들어온 상징으로서의 이순신까지 다각도로 조명하는 전시다.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인근 전남 백도 근처에서 출수된 지자총통의 파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 따로 보관 중이었으나 이번 전시를 통해 하나의 총통으로 확인됐다.
1594년 4월 제작된 의장용 칼로, 이순신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번 전시 유물은 총 258건 369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순신 종가가 보관해 온 주요 유물 20건 34점 진본이 서울에서 한꺼번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난중일기’, ‘임진장초’, ‘서간첩’, 이순신 장검, 류성룡의 회고록 ‘징비록’, ‘조선방역지도’ 등 국보 6건 15점에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보물 39건 43점, 이충무공 유적보존 ‘성금대장’ 등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 9점이 더해져 이순신 관련 기록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왜기공도병. 정유재란 때 명군이 일본군을 물리친 공을 기념해 제작한 그림을 저본으로 후대에 제작된 병풍그림이다. 전반부(위쪽) 6폭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후반부 6폭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흩어져 있다가 ‘우리들의 이순신’전에서 처음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임진왜란의 전황을 알 수 있는 해외 유물도 함께 공개된다. 다치바나 무네시게 가문의 투구와 창,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이 소장해온 ‘울산 왜성 전투도’ 병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상화와 목상 등 일본 다이묘(봉건 영주)가 보관해 온 유물이 국내 처음 공개된다. 조선과 연합한 명나라 군대의 활약을 그린 ‘정왜기공도’ 병풍도 스웨덴에서 건너왔다. 스웨덴 최대의 금융가 발렌베리 가문이 소장하던 작품으로, 전반부 6폭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후반부 6폭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흩어졌다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처음 한 공간에 모였다.

전시는 1794년 충남 아산에 세운 ‘어제 이순신신도비’ 비문 가운데 명나라 장수가 이순신에 대해 내린 평가로 그의 삶과 정신을 다시금 비춘다. “이순신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찢어진 하늘을 꿰매고 흐린 태양을 목욕시킨 공로가 있는 분이다.(經天緯地 補天浴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인간 이순신을 종합적으로 조명하고 그가 시련을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라며 “이번 전시가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지지하는 응원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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