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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종교 40년, 한양원 회장이 남긴 씨앗 [종교 칼럼]

입력 : 2025-11-17 18:28:35 수정 : 2025-11-17 18:28:35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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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 년을 이어온 민족의 숨결은 오늘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1985년 11월 16일, 한국의 아홉 계통, 서른네 개 교단, 백여 명이 넘는 이들이 종로에 모였다. 일제 식민지기부터 이어진 탄압과 광복 이후의 ‘유사·사교’ 낙인은 민족종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깊은 상처였다. 그 상처를 서로의 온기로 덮고자 했던 신앙인의 간절함이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의 첫 숨이었다.

 

협의회 창립 4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 한 번 이 모임의 정신적 기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족종교는 우리 민족이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태어났다. 국망의 절망 속에서도 개벽의 도를 외치며 새 문명의 도래를 예언했던 이들이 바로 민족종교의 선각자였다. “우리의 말과 글, 옷과 음식이 세계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100여 년 전의 예언은 오늘 한류라는 이름으로 기적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민족종교가 말한 진정한 개벽은 상극에서 상생으로, 분열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인류 문명의 방향 전환이었다.

 

협의회 창립의 계기가 된 ‘단군 성전 건립 무산 사건’은 민족종교의 현실을 일깨운 상징적 사건이었다. 기독교계의 강한 반발로 민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간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은 오히려 하나의 정신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했다. 거리 시위와 서명 운동이 이어졌다. 그 중심에 고(故) 한양원 회장이 있었다. 민족종교 갱정유도의 도정이자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창설자, 평생을 갓을 쓰고 두루마기 차림으로 살아낸 구도자. 그는 외래문화가 범람하는 현실을 보며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제2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토로했다. 그의 말은 문화주의적 주장만이 아니었다. 이름을 빼앗기고, 말과 글을 잃고, 정신을 짓밟힌 민족적 상흔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의 절규였다. 그래서 그는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를 세우고, 민족종교의 연대를 위해 자신의 평생을 걸었다.

 

1965년 평화통일선언 사건은 지금 보면 상식적인 주장임에도, 당시에는 평화통일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민족종교 지도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냉전의 공포 속에서 신앙의 양심이 억압된 대표적 사례였지만, 한양원 회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성과 평화통일의 길을 외쳤다. 교단이 탄압받아 신자들이 깊은 산골로 숨을 수밖에 없던 시절에도 갱정유도는 도덕과 전통의 등불을 놓지 않았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평생 대중교통으로 다니며 이웃 종교 행사까지 찾아다니던 그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우렁찬 목소리로 “과로·과민·과식을 피하라”고 웃던 그는, 물질문명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전통과 도덕의 가치를 굳건히 지킨 정신적 기개를 보여주었다. 오늘 민족종교가 향해야 할 길 또한 그가 걸었던 길에서 시작된다. 상생의 문명을 열고, 남북 통일과 세계 평화를 향한 공동번영을 모색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얼을 되찾는 일이다. 물질문명이 극에 달한 지금, 인간의 품성과 전통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은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 민족종교협의회는 지난 9월 30일 국운융성 기원 행사를 가진 이래, 17일 서울 용산 앰버서더호텔에서 천도교 등 12개 회원 교단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40주년 기념식을 갖고 그 정신과 결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는 이제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반만 년의 정신 위에 오만 년의 미래를 열겠다는 다짐, 세계와 인류를 향해 한민족의 홍익정신을 펼치겠다는 포부, 그리고 개벽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실천하겠다는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꽃은 피면 지지만, 씨앗은 남는다. 한양원 회장이 남긴 씨앗은 박우균(2대), 이범창(3대)에 이어 김령하(4대) 현 회장이 맥을 이으며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조용히 싹을 틔우고 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민족정신의 등불이 앞으로의 40년, 그리고 그 너머의 세대에게도 변함없이 빛을 비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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