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27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미군의 6·25 전쟁 참전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한반도라는 낯선 공간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심에 사로잡힌 채 행군하는 미군 병사 19명(육군 14명, 해병대 3명, 해군·공군 각 1명)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이를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공개하는 날을 굳이 7월 27일로 잡은 것은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과 북한군 및 중공군 간의 정전협정 체결일(1953년 7월 27일)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마침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란히 행사를 주관해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그날 40여년 전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참전용사 중에는 제리 코텍(당시 67세)도 있었다.
제리 코텍은 1928년 뉴저지주(州) 리틀페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멀리 동유럽 체코에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였다. 아버지 프랭크 코텍은 제과 기능자로서 빵집을 운영했는데, 제리를 비롯한 네 자녀에게 체코 전통 쿠키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향수를 달래곤 했다. 유럽 대륙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미국은 징병제를 도입했다. 1946년에야 고교를 졸업한 제리는 2차대전 기간에는 징집을 면했으나 몇 해 뒤 발발한 6·25 전쟁에는 육군 통신병으로 참전했다. 그는 성실한 복무로 표창을 받았고 또 자신이 참전용사라는 점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정작 지인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준다거나 하는 일은 즐기지 않았다. 직접 혹은 간접 체험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이들은 제리의 태도에 공감이 갈 것이다.
정전 이듬해인 1954년 제리는 군인 시절부터 사귄 여성과 결혼했다. 제대 군인의 학업을 돕는 법률(일명 ‘G.I. 빌’)에 따라 제리도 등록금 걱정 없이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갔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주 요크에 있는 기업에 입사해 재고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25년 넘게 일하고 은퇴한 뒤에는 컨설턴트로서 회사 업무에 계속 조언을 했다.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요크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자신의 ‘뿌리’에 해당하는 체코에 관심이 지대했던 제리는 만년에 체코 우표와 엽서 수집으로 소일했다. 2011년 그가 83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어느 지인은 “고인은 체코의 유산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며 “체코가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제리의 딸 티나 코텍(59)은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산 아버지와 달리 젊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2023년 민주당 소속으로 미 북서부 오리건주 주지사가 됐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그는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과의 대화 도중 “부친(제리 코텍)의 6·25 전쟁 참전 경험으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느끼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코텍 주지사는 “방한 일정 중 전쟁기념관은 반드시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리건주 윌슨빌에 6·25 전쟁 기념공원이 있음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코텍 주지사의 건승을 기원하고, 아울러 그 선친인 제리 코텍 6·25 참전용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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