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
왜 6천 년인가?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을 떠난 그날부터 하늘부모님은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 헤맸다. 한 아이가 집을 나가 세상을 떠돌다 결국 돌아온다고 상상해 보자. 그 아이는 처음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서서히 기억을 되찾고, 부모의 사랑을 조금씩 깨닫고, 마침내 온전히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성서상의 인류 역사 6천년이 바로 그러한 여정이었다. 타락으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복귀섭리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마치 나무가 씨앗에서 싹트고, 줄기가 자라고, 꽃을 피워 마침내 열매를 맺듯이, 하늘부모님의 섭리도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한 걸음씩 넓어지는 구원의 지평
복귀섭리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좁은 범위에서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왔다. 아담에서 노아까지는 개인과 가정적 기대를 조성하는 섭리였다. 아벨의 제물, 노아 한 사람의 의로움을 통해 하늘부모님은 먼저 개인과 가정 차원의 복귀 기대를 세우셨다. 아브라함 때부터는 종족과 민족적 기대가 조성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삭을 거쳐 야곱으로 이어졌고, 야곱의 12아들을 통해 종족으로 번성했다. 이집트에서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통해 해방되면서 민족적 복귀의 기대가 세워졌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구원의 지평은 세계로 넓어졌다. 더 이상 유대민족만이 아닌 열방에 복음이 전해졌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선포했다(갈 3:28). 그리고 재림의 때, 구원은 지상을 넘어 천상까지, 천주적 차원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복귀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로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한 단계가 승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기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종에서 양자로, 양자에서 직계 자녀로
복귀섭리를 통해 하늘부모님과 인간의 관계도 점점 가까워졌다. 구약시대, 인간은 ‘종’의 위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과 율법을 따르며 제물을 드렸다. 순종하면 축복받고, 거역하면 벌을 받는 계약적 관계였다.
신약시대에 들어서며 관계는 한층 깊어졌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요 15:15).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신도들은 영적으로 거듭나 ‘양자’의 위치에 올랐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그러나 양자는 아직 완전한 자녀가 아니다. 바울 사도는 이 한계를 고백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영적으로는 구원받았지만 육적으로는 여전히 죄의 경향성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성약시대가 열리면서 인류는 마침내 ‘직계 자녀’의 위치로 복귀되었다. 실체 참부모님을 통해 중생함으로써 원죄가 청산되고 창조본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렇게 종→양자→직계 자녀로 나아가는 심정권의 발전도 단계적 과정이었기에, 6천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독생자 4천 년, 독생녀 6천 년의 대칭
성서 역사 6천 년의 섭리에는 놀라운 대칭 구조가 숨어 있다.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 약 4천 년은 독생자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하늘부모님은 아브라함을 부르고, 그 후손 야곱의 자손들을 통해 유대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특히 예수님이 오시기 약 400년 전부터는 세계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헬레니즘 문화로 철학이 발전하고, 로마제국은 복음 전파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유대민족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겪으며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다.
아담으로부터 독생녀 탄생까지 약 6천 년은 독생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하늘부모님은 동방과 서방에서 두 갈래의 섭리를 펼치셨다. 동방에서는 한민족이 수천 년 동안 제천문화를 발전시키며 하늘을 모시는 민족성을 길러왔다. 백의민족으로서의 순수성과 대망사상은 한민족의 영적 DNA가 되었다. 특히 청주 한씨 가문에서 신앙의 정성이 축적되었고, 일제의 가혹한 박해 속에서도 1930년대 신령집단들은 순수한 신앙의 불씨를 지키며 메시아 재림을 간절히 고대했다.
서방에서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초대교회 순교자들, 중세의 여성 신비가들, 종교개혁, 경건주의, 그리고 대각성운동을 통해 신부 영성을 준비하셨다. 특히 칼뱅이 1543년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게 제출한 때로부터, 독생녀 탄생의 해인 1943년까지는 정확히 400년의 간격이 있다. 이는 독생자 오시기 약 400년 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루어진 개혁과 놀라운 섭리적 대칭을 이룬다.
18세기 말, 자발적인 신앙운동을 통해 천주교 신앙이 이 땅에 전래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개신교 신앙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신령한 역사가 불같이 일어났으며, 이때 한민족의 고유한 영성과 기독교의 신부 영성이 하나로 만나는 섭리적 결실이 이루어졌다.
두 강물이 만나는 곳
인류 역사 6천 년. 그것은 잃어버린 자녀를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신 하늘부모님의 사랑의 역사였다. 개인에서 천주로, 종에서 직계 자녀로, 영적 구원에서 실체적 구원으로. 복귀섭리는 마치 거대한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꾸준히 전진해 왔다.
1943년 음력 1월 6일, 평안남도 안주에서 마침내 두 강물이 만났다. 동방 한민족 수천 년의 영성과 서방 기독교 2천 년의 신부 영성이 하나로 합류했다. 그 합류점에서 독생녀가 탄생하였고, 1960년 어린 양 혼인잔치를 통해 참부모님이 현현하였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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