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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그림, 실체와 허구 사이… 오해의 간극을 탐험하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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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28 06:00:00 수정 : 2025-10-27 1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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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귀’를 소망하는 김은정의 회화세계

오해 인정할 때 비로소 해석 자유로워
‘고래나무 물사슴’·연작 소품 시리즈 등
상상 덧입혀 나와 타인과의 간극 은유

11월 8일까지 학고재서 ‘말, 그림’展
경계 허문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 엿봐

세상에 태어나 ‘나’라는 세계에 갇히는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게 된다. 분리된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수많은 말을 내뱉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맴돌거나 서로 간의 거리를 더 넓혀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말뿐만이 아니다. 물리적인 모든 표현들(표정과 몸짓, 웃기, 울기 등)은 모두 오해의 가능성을 품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설명(해명)하고, 듣고 말하며, 쓰고 읽는다. 그래도 내가 타인이 될 수는 없기에, 완전한 이해를 향한 시도는 늘 좌절된다. 관계는 언제나 미세한 어긋남 위에 세워진다.

 

김은정, ‘고래 나무 물사슴’(2025). 양이언, 학고재 제공

◆오해된 이야기-해방된 소통

김은정(b. 1986)의 예술은 이러한 틈으로부터 출발한다. 10월 2일부터 11월 8일까지 학고재에서 진행되는 개인전 ‘말, 그림’은 제목이 암시하듯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탐험한다. 판화를 전공하고 독립출판, 편집, 북디자인을 병행해 온 그는 텍스트(말)와 그림의 관계를 줄곧 탐색해 왔다. 언어화될 수 없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오해를 좁히고자 시도되는 말과 그림. 작가는 그 둘이 대등한지,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는지, 혹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말 없는 회화를 선택한다.

전시장에는 말이 없지만, 수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이야기와 감정,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되지 않는 장면들로 북적인다. 손이 세 개인 여자, 여러 시점이 혼재하는 화면, 하늘을 떠도는 고래, 다리 없는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 등.

관객은 으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의도를 궁금해하지만, 김은정은 그것을 전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한다. 오해를 허용하고 독려하는 것이다. 전시 비평을 쓴 허경 철학학교 혜윰 교장은 “김은정은 오해를 통해 세계의 기묘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고 말하며, 그의 예술을 “체념과 절망의 낙관주의”라 평한다.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비관하는 대신, 그로부터 희망을 본다는 것이다. 사실 세상의 수많은 갈등과 비극은 우리가 스스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해방된다. 고집할 것도, 지킬 것도 사라지게 되면 들을 일만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들여다보기, 드러내기

김은정은 매일 아침 일기를 쓴다. 저녁에는 감상에 치우칠 수 있어 아침에 여러 단상을 기록하는데, 생각의 특이점을 발견하고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라 말한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루를 정리하기.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확인하는, 즉 자기 자신을 오해하지 않으려는 의지와 소망을 내포한다.

얼핏 일상의 단편 같아 보이는 소품 연작에서도 아침 일기를 쓰는 마음이 담겨 있다. 애착 인형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 비를 맞고 있는 비둘기, 바둑돌을 두는 손, 할머니의 오이 반찬을 먹는 모습 등. 특별할 것 없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여기에 작가의 상상이 덧입혀진다. 오이 반찬은 중력을 거스른 채 허공으로 상승하고 비둘기는 하나인지 둘인지 알 수 없는 형태로 그려진다. 꽉 잡은 인형만큼이나 단단한 주먹, ‘말하는 사람’의 굳게 닫힌 입. 이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다. 여기에는 대상에 대한 마음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누군가의 귀를 화면 가득 채운 그림에는 ‘보이는 세계’라는 제목이 붙는다. 귀는 우리가 말하는 것을 타인이 들을 수 있다는 증거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말과 의미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그 증거물을 보며 짐작할 수밖에 없다. 짐작의 세계, 추측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래서 보이는 세계. 작가는 다시 한번 나와 타인 사이의 간극과 오해, 실패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김은정, ‘기도’(2025). 양이언, 학고재 제공

◆기도하는 세계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길이 약 4m에 달하는 ‘고래 나무 물사슴’은 작가의 말을 빌려 ‘애도’의 그림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에서 작업하는 그는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그런데 기록적 폭우가 내린 어느 여름날, 작업실 뒷산에 작은 폭포가 생겼고, 앙상한 고라니가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작가는 평소 자주 본 고라니의 모습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그렸다고 덤덤하게 말하지만, 스스로 애도의 그림이라 칭한 것처럼 작품에는 기도와 염원이 담겨 있다. 물을 좋아해서 영어로 ‘워터 디어’라 불리는 고라니는 원 없이 물에 몸을 담그고 뛰어다니며,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낙원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애도와 소망이 덧입혀진 풍경에서 더 이상 현실이냐, 허구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좌측 하단의 파란 형태가 물이 아닌 고래의 등을 그린 것이라 해도, 고라니들이 연약한 나뭇가지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일지라도, 그의 그림은 허무맹랑한 환상으로 관객을 현혹하지 않는다. 분명한 마음으로 재현된, 새로운 현실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고 느끼는 대로 펼쳐진다는 메를로퐁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애도의 풍경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어 작가의 감각 속에서 살아 있는 세계로 존재한다.

◆쉼표의 자리에서

김은정이 말과 그림 사이에서 들여다본 간극과 쉼표는 표현의 수단에 머물지 않고, 실체와 허구, 작가와 관객, 자신과 타인의 관계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항상 좌절보다는 낙관이 자리한다. 의지와 소망하는 마음은 경계의 구분을 무화하며, 오해의 세계에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연다.

이러한 태도는 그림 속 대상이나 사건뿐만 아니라 관객을 향해 있기도 하다. 그는 관객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단정하거나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한숨을 들이쉬기를 권한다. 우리는 여전히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의도가 형식이나 내용이 아닌 의지의 태도임을 인식한다면, 작품과의 소통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리게 된다.

그는 관객이 작품 속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길 바란다.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해방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내고, 무료하게 흘러가는 수평적 시간 속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애초에 예술은 소망과 기도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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