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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거부하자 무자비 고문… 택시기사들엔 ‘탈출자 현상금’도” [밀착취재-캄보디아 범죄단지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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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15 18:26:31 수정 : 2025-10-15 21:27:11
시아누크빌=글·사진 윤준호·소진영 기자,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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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절망의 늪’ 시아누크빌

“돈 많이 번다” 말 믿은 청년들
귀국 요구하자 감금·폭행당해
현지 경찰 구조돼도 안심 못해
“조직서 돈 주고 빼내가” 불안

범죄단지 내외부 조직원들 감시 삼엄
“시아누크빌만 카지노 170여개 달해”
건물 외곽 곳곳엔 CCTV·철조망 설치
택시기사들엔 ‘탈출자 현상금’도 걸어

경찰에 구조돼도 몇 달씩 유치장 신세
화장실·샤워실 사용에도 팁 내야 가능

한인 여성 베트남 국경서 숨진 채 발견
현지 경찰 조사… 韓 경찰도 내사 착수

한국인 대학생이 캄보디아에서 살해된 뒤 두 달여간 시신 송환조차 이뤄지지 않아 국민적 공분이 확산하자 정부가 뒤늦게 합동대응팀을 현지에 급파한 15일 시아누크빌주 경찰청 유치장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국인 청년 두 명을 만났다. 각각 지난해 6월과 올 2월 캄보디아에 왔다는 두 청년은 “유치장 신세를 질 줄 꿈에도 몰랐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왔다”고 고개를 떨궜다.

15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한 카지노 건물 외곽 울타리에 철조망과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이들 중 한 명인 김모(28)씨는 일주일간 전화사기 조직에 붙잡혀 범죄에 사용하는 대본을 외웠다고 했다. 범죄 가담 사실을 깨닫고서야 “동의할 수 없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얼굴에 검은 봉투가 씌워지고 수갑까지 채워 봉고차에 태워졌다. 두려움에 떨며 도착한 곳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의 도시 포이페트였다.

 

곳곳이 부르터 딱지가 앉은 얼굴을 한 김씨는 100일가량 갇혀 있으면서 온갖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말했다. 물·전기 고문은 기본이었고 방에 갇혀 용변을 바닥에 해결해야 했다. 같은 공간에 있던 구모(35)씨가 고문받던 중 “살려달라”는 소리를 멀리서 듣고 한국인임을 확인해 함께 탈출을 도모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텔레그램을 통해 한 한국 식당에 구조 요청을 했지만 휴대전화 검열 과정에서 조직에 들켰다. 하지만 김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는 “국경 인근에 감금돼 있을 때 한 중국인이 탈출하려다 실패해 맞아 죽은 시신을 소각했다는 조직원 말을 들었다”며 “핏자국을 닦으라는 지시를 이행한 뒤 일주일 동안 손에서 피비린내가 났다”고 했다.

 

한 차례 탈출에 실패한 김씨는 시아누크빌로 이송돼 수갑을 찬 채로 종일 생활했다. 지난 9월29일 현지 경찰에게 구조됐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구조 당시부터 경찰과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통역 없이 알 수 없는 문서에 수차례 지장을 찍었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중국 조직이 경찰에게 1만5000달러(약 2100만원)를 지불하고 유치장에 있는 탈출자들을 다시 조직으로 빼내갔다”며 불안해했다. ‘구조’와 ‘탈출’ 과정에서 현지 경찰의 도움을 받기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김씨는 초반에 서너평 남짓한 유치장에서 16명이 지내며 앉아서 자야 했다고 설명했다. 유치장에선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려면 경찰에게 5∼10달러(약 7000∼1만4000원)의 팁을 내야 했다. 그는 “밥이 제공되지만 화장실 이용이 자유롭지 않아 식사를 꺼리게 된다”고 했다. 이날 찾은 유치장에는 김씨와 구씨 한국인 2명과 중국인 5명이 있었다. 모두 강제 추방을 기다리는 이들로, 유치장과 이민국에서 각각 두어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범죄조직의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는 추방도 송환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범죄단지에서 생활하다 탈출을 결심했지만 결국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통장을 가져오면 값비싸게 팔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캄보디아로 건너와 시아누크빌의 한 카지노 호텔 건물에 갇혀 있던 정만호(가명·22)씨는 현지에서 한인 구조 활동을 벌이는 오창수 선교사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이날 새벽 ‘개구멍’을 통해 탈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한 시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가운데 “(건물) 지하 1층은 24시간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다. 정말 힘들다”며 탈출 포기 결정을 전했다.

 

취재진이 정씨가 갇힌 카지노 호텔 건물이 위치한 시아누크빌 내 범죄단지 밀집 지역을 둘러보니 건물 내외부에 조직원·경비원의 감시가 삼엄했다. 교민들은 이곳이 7∼8년 전 중국 자본이 들어와 만들어진 ‘신도시’인데, 카지노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중국인들로 구성된 범죄단체도 함께 자리 잡았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분양받지 못한 공실들이 범죄 행위의 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한 교민은 “시아누크빌 안에만 카지노가 170∼190개에 달한다”고 전했다.

14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시하누크빌에 있는 범죄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 모습. 연합뉴스

실제 카지노 호텔 간판을 단 건물 여럿이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일부 지상층에는 세대마다 테라스에 빨래가 널려 있고 간이 운동기구가 있는 등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있었다. 건물 외곽 곳곳에는 폐쇄회로(CC)TV와 월담을 막기 위한 철조망도 쳐져 있었다. 공사 인부 외에도 출입로마다 남성 한 명이 지키고 있었고, 지하주차장 통로는 경비원 서너 명이 지키고 있었다.

 

인근 건물들에는 공사 중이라는 걸 안내하는 중국어 안내판들이 있었다. 카지노 호텔로 향하는 골목길에 있는 건물 13곳 가운데 아직 공사 중이거나 공사가 중단돼 콘크리트 뼈대만 갖춘 건물만 7곳이었다. 공사가 멈춘 것으로 보이는 한 건물 앞에는 카지노와 중국식 노래방(KTV), 고급 술집 등 시설을 갖춘 숙박업소를 짓는다는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골목 앞 대로변에는 버젓이 ‘불법대출’이 가능한 환전소도 있었다.

이 환전소 유리창에는 ‘여권 저당’, ‘휴대전화 저당’, ‘자동차 저당’, ‘명품 저당’ 등 담보물을 받고 돈을 빌려준다고 중국어로 쓰여 있었다. 일대를 장악한 중국 범죄조직들이 심지어 택시기사들에게 “탈출자를 잡아오면 500∼1000달러를 지급하겠다”며 ‘현상금’을 거는 일도 있다는 후문이다. 전날 스스로 탈출에 성공한 한 남성은 조직원들로부터 “여기서 나가봤자 공항 가면 다시 붙잡혀 올 것”이란 협박을 들었다고 했다.

 

지난 8일엔 30대 한국인 여성이 캄보디아 국경 인근 베트남 모처에서 숨긴 채 발견돼 현지 경찰이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 여성 시신에 폭행 등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경찰은 이와 관련해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캄보디아에서 탈출한 한국인으로부터 이 여성과 관련해 ‘현지 호텔에 장기간 감금됐다’는 진술을 확보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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