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와 볼에 겹겹이 주름진 피부, 납작한 코와 좁은 콧구멍, 윗턱보다 아랫턱이 더 튀어나온 모양. 일부 ‘단두종’ 개들이 가진 이런 특징은 머리를 전체적으로 더 크고 납작해 보이게 한다. 주름이 많을수록, 코가 눌려 있을수록 더욱 사랑받는다. 현재 이들의 외모는 그런 특징을 나타내는 유전적 요인을 반복적인 교배와 인위적인 선택으로 강화한 결과다.
하지만 극단적인 만큼 더 우수한 외모로 평가받는 이러한 특성은 개들에게 아픔이다. 귀여움을 담당하는 그 특징들이 실은 각종 기형과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동물권 보호 단체인 PETA(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위한 사람들의 모임)는 지난 7월 뉴욕주 대법원에 아메리칸 켄넬 클럽(AKC)과 여러 품종별 제휴 클럽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KC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개 품종 등록 기관이자 ‘도그쇼’ 운영 단체다.
PETA는 프렌치 불독, 퍼그, 잉글리시 불독 등 여러 인기 품종에 대한 AKC의 품종 표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품종 표준이 설명하는 ‘극도로 짧은 코 위에 심한 주름’(프렌치 불독), ‘뭉툭하고 짧은 주둥이’(퍼그) 등이 개들의 만성 통증과 조기 사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실제 단두종 개들은 납작한 두개골 구조로 인해 다양한 호흡기 문제를 갖는다. 콧구멍이 작다 못해 막히면서 숨 쉬기가 어려워지고, 연구개가 길어 기도를 막기도 하며, 숨 쉴 때마다 후두가 기도 안으로 말려들어가기도 한다.
‘단두종 증후군’으로 불리는 이 질병들은 납작한 얼굴을 가진 개들에게서 흔히 발생한다. 수술하지 않을 경우 고통이 심하고 수명을 줄인다.
또 주름진 피부는 습진과 피부염에 약하고, 튀어나온 아랫턱은 부정교합을 유발해 소화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PETA는 “AKC와 그 파트너들이 개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건강과 기능보다 외모를 더 중요하게 본다”며 “품종 표준이 개들의 변형된 특징을 정의하고 보상함으로써 체계적인 동물 학대를 조장하고 뉴욕의 동물 보호법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KC가 현행 품종 표준을 취소하고 다시 작성하도록 법원의 명령을 요구했다.
AKC는 “품종 표준이 건강에 해로운 개를 만든다는 PETA의 주장은 잘못됐다”고 반발했다.
이 기관은 성명에서 “품종 표준은 품종의 무결성과 건강을 보존하기 위해 수의학 및 과학적 의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개의 건강과 복지가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은 미국 주요 법원에 개의 품종 정의 자체를 문제 삼은 첫 사례로 동물 복지법과 도그쇼 문화 간 논쟁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논란이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해에는 세계 3대 도그쇼 중 하나인 영국 크루푸츠쇼에서 1위를 차지한 ‘엘튼’이라는 프렌치 불독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엘튼은 매우 짧은 주둥이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콧구멍을 갖고 있었다. 주최측은 “엘튼이 수의학 검사를 통과했다”며 결과를 옹호했지만, 동물복지 단체들은 “개의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특성을 기념해서는 안된다”며 비판했다.
영국수의사협회는 2018년 “10년 만에 프렌치 불독 사육 수가 3000% 늘었다”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특징을 가진 단두종 개를 구입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권고했다.
네덜란드는 2014년부터 단두종 품종의 번식을 규제하고 있고, 노르웨이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서만 번식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특성을 강화하는 번식을 금지하고 있으며, 그런 개의 도그쇼 참가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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