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이른바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법’이 국회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교사의 정치 참여가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며 관련 법안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탓이다. 국민의힘이 “대한민국 교육이 망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만큼 향후 입법 과정에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교원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교원 정치 참여 기본권 보장’ 법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9일 한국노총에서 열린 1차 고위급 정책협의회에서 “(교사들이) 페이스북에 ‘좋아요’도 못 누르는 현실, 그리고 정치 후원금을 내면 범법자가 되는 현실은 너무 낙후됐고 후진적”이라며 “교사 출신인 백승아 의원이 발의한 7가지 법안을 이른 시일 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처리를 예고한 법안은 지난해 7월 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발의한 교원 정치 참여 관련 7개 법률 개정안이다. 해당 법안들은 교사가 정당의 당원이나 발기인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 사직해야 하는 현행 제도를 휴직 상태에서도 출마할 수 있게 바꾸고, 근무시간 외에 선거운동 같은 정치 활동도 허용한다.
국민의힘은 교사의 정치 참여 보장을 두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정 대표의 발언에 대해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라며 “교사들이 중립성을 잃는 순간 대한민국 교육은 망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교육이 망하는 건 대한민국 미래가 망하는 것이라 확신한다”고 꼬집었다. 장동혁 당대표도 입장을 묻는 말에 “저는 교육을 공부했고 교육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던 사람”이라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정치적 편향성이 심어지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교사의 정치참여는 교육공무원법·정당법·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등에 의해 제한된다. 구체적으로 교사는 정당가입이나 정치자금 후원을 할 수 없고, 선거운동도 참여할 수 없다. 휴직 상태에서 선거에 출마하는 대학교수와 달리 초·중·고 교사는 선거일 90일 전에 사직해야 한다. 민주당 백 의원은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교직을 사직했고,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회장직을 내려놨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교원의 정당가입 금지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현직 교사 9명이 ‘국가공무원법 제65조 1항(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할 수 없다)’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초·중등학교 교원이 당파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정당을 제외한 ‘그 밖의 정치단체’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교원이 공직선거나 교육감선거에 입후보할 경우 선거일 90일 전 사직해야 하는 조항도 합헌 결정을 받았다. 헌재는 “선거일 전 90일부터는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로 교원 직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입후보 시 일정 기간 전까지 교직을 그만두도록 하는 것은 교원의 직무전념성 담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교사 단체들은 이런 제한이 교사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5개 교원단체와 교사정치기본권찾기연대는 지난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한 원칙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교사도 평범한 시민으로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정책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교사의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공약을 내기도 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근무시간 외에는 직무와 무관한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회복하겠다”며 “선생님도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하게 존중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해당 내용은 정부 국정과제로도 채택됐다.
‘90일 전 사퇴’ 조항의 개정 필요성은 여야 모두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교원이라는 이유로 교육감선거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놨다는 부분은 현장에서도 이야기들이 많았다”며 “이 부분은 긍정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교사의 정치활동을 두곤 학부모단체에서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EBS 영어 스타강사 출신인 국민의힘 김효은 대변인은 1일 논평을 통해 “교사가 시민으로서 기본권을 가진다는 점은 존중하나, 권리 보장과 수업 중립성은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며 “정치적 편향을 가진 일부 교사가 수업마다 원치 않는 정치적 관점을 은근히 주입한다면, 학부모가 느낄 불안과 분노는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교육위는 소위에서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담은 교육공무원법 개정법률안 등을 심사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10월 국정감사 이후 재심사하기로 했다. 다만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 과정에서 강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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