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문명은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했다. 해마다 6~7월이면 강이 범람해서 강가에 비옥한 흑토가 조성되었고,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기 위한 지식과 시설을 발전시켜 가면서 문명이 탄생되었다는 얘기다.
이집트 미술은 이 강 유역의 풍요 속에서 두 번의 전성기를 이뤘다. 첫 번째 전성기는 하류의 멤피스를 중심으로 한 고왕국 시대로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피라미드가 많이 지어진 ‘피라미드 시대’이다. 두 번째 전성기는 그보다 대략 1000년 후 상류의 테베를 중심으로 한 신왕국 시대로 ‘위대한 신전들의 시대’로 불린다. 돌을 쌓아 올리는 피라미드 방식과 달리, 돌을 깎아서 만든 무덤들과 거대한 신전이 많이 지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60여명의 왕들 무덤이 모여 있는 ‘왕들의 계곡’이다.

이 작품은 ‘왕들의 계곡’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궁정 관료의 조각이다. 육면체인 돌덩어리를 그 형태를 살리면서 깎아서 단순하고 정돈된 모습이다. 얼굴은 사실적으로 나타냈지만, 팔과 발은 흔적만 보이고 육면체 자체가 몸통을 대신하고 있다. 몸통의 전면과 받침대의 전면에는 그 시대와 왕을 보필했던 그 관료의 행적에 대해서 상형문자로 기록해 놓았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집트인들은 미술작품에서 사건과 인물들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이를 위해서 형태를 되도록이면 명확하게 나타내려 했고,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 했다. 조각에서는 육면체를 기준으로 작품을 깎는 방향도 정면, 측면, 위에서 아래로 세 방향만을 허용했으며, 좌상의 경우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양발도 가지런하게 정렬해서 단순함과 엄숙함을 드러내려 했다.
이 작품의 얼굴 묘사를 보면, 이집트 미술이 사실적 묘사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 미술의 목적과 기능은 영원히 지속되고 후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명확한 원칙을 지킨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 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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