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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입시원서 보냈는데”… 집배원 수소문해 ‘배송조회’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

입력 : 2025-09-29 18:45:59 수정 : 2025-09-29 21:18:39
소진영·채명준·유지혜·장한서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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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이후 첫 평일 곳곳서 혼란

우체국 택배 조회 안 돼 ‘발 동동’
시민 “유실 가능성 안내 들어 불안”
대출 서류 등 떼러 주민센터 ‘북적’
“화장장 예약하려 전화만 200통”

‘하도급지킴이’ 장애로 대금 차질
당국 “추석전 지급 위해 규칙 개정”

정부는 주말에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일부 시스템이 중단됐다가 대부분 복구했다고 밝혔지만, 우체국과 주민센터 등 현장에선 크고 작은 혼선이 이어졌다. 일상생활에 밀접한 우편·행정 이용 불편을 비롯해 본인 확인 불가로 인해 금융 서비스에도 여파가 미쳤다.

화재감식 29일 경찰 관계자들이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탄 무정전 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옮기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화재 이후 첫 업무일인 26일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우체국을 찾은 시민들은 우체물의 행방을 알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가까스로 업무를 재개했지만, 화재로 전산 기록이 소실돼 실시간 배송 위치 추적 기능이 정지되면서 우체국 직원들이 담당 집배원을 수소문한 뒤 전화기를 붙잡고 배송 상황을 확인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의류업 종사자 정모(42)씨는 “미국에서 열릴 행사에 보낼 티셔츠가 수백장인데,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추석 연휴가 끼어 있어 후작업까지 고려하면 배송 기한이 빠듯하다”고 초조해했다. 한 중년 여성은 아들의 대학원 입시 원서가 접수 마감 시간 이전에 도착할지 확인할 수 없게 되자 눈물을 보였다.

 

대전둔산우체국에서 추석 선물을 보내려다가 발걸음을 돌린 양승희(45)씨는 “전산망이 거의 정상화됐다고 해서 왔는데 ‘배송 조회가 어려워 유실될 수 있다’는 안내를 들으니 불안하다”며 “민간택배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중단됐던 우편서비스 대부분은 재개됐지만 미국행 국제 특급 우편서비스(EMS), 착불·안심 소포 등 수탁사업 서비스 등 일부는 당분간 이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민원 응대 차질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가 나흘째 이어진 29일 광주 북구 용봉행정복지센터에 일부 민원 처리가 제한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광주=뉴시스

온라인 업무가 ‘먹통’이 되면서 주민센터도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주말에는 대출과 부동산 계약 등에 필요한 주민등록등본·토지대장 등 민원서류 발급이 불가능해 업무가 미뤄지는 사례가 잇따랐는데, 이날도 시·군·구청과 주민센터를 직접 방문해야만 발급이 가능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최윤정(57)씨는 “대출을 받아 기한에 맞춰 대금을 내야 했는데 가족관계증명서 출력이 안 되더라”라며 “거동이 불편한 가족과 함께 아침 일찍 동사무소를 찾았는데 30분 넘게 대기했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 한 주민센터를 찾은 김모(28)씨는 ‘서버 장애로 언제 졸업·성적증명서를 발급받을지 기약이 없다’는 센터 측 답을 들었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가서 증명서를 받아 와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한 주민센터 소속 공무원은 “복구 수준은 지역과 기관마다 편차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화장장 등 장사시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제주도립 장사시설인 제주시 양지공원은 e-하늘 화장예약시스템을 통한 화장 예약 접수를 중단했다. 양지공원 관계자는 “시스템 운영 중단으로 접속이 불가해 기존 예약자들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이날 총 개장 유골 화장 예약자는 30여명인데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상조회사 팀장 정모(57)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화장터에 전화가 폭주하니 통화도 되지 않고 난리였다”며 “15년 동안 이 일하면서 화장장 예약이 마비됐다는 건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장인을 떠나보낸 한 중년 남성도 “저희 장례지도사 말로는 전화를 한 200번 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유족들의 불편함과 불안감은 있으실 것”이라면서도 “화장이 안 되거나 3일장을 못하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큐코드 이용 불가 29일 인천국제공항 자동검역심사대에 ‘Q-CODE 이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당국은 이날 수기로 건강상태질문서를 작성하게 했다. 인천공항=이제원 선임기자

행정안전부 전산망에 영향을 받는 형사사법기관 서비스에도 제동이 걸렸다.

 

경찰은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96개 시스템 중 경찰 관련 8개 서비스에 차질이 생겼다고 밝혔다. 국민비서 서비스가 멈추면서 범죄경력회보서 신청·처리 알림과 우편발송 자동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실종아동, 여성 등 사회적 약자 종합지원체계도 로그인이 어려워졌다. 유실물 종합 관리 시스템은 접수 문자 알림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민증을 통한 본인 확인이 불가한 탓에 증권가에서는 비대면 계좌 개설과 모바일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 발급 등 일부 서비스가 제한됐다. 이에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 운전면허증과 여권 등 대체 인증 수단을 활용할 것을 안내했다. 금융위원회는 다만 국정자원 시스템이 순차적으로 복구됨에 따라 금융서비스 대부분이 정상화됐다고 설명했다.

 

조달청이 운영하는 공사대금 관리시스템 ‘하도급지킴이’ 장애로 공공이 발주한 공사대금 지급에 차질이 빚어지며 추석 전 소규모 업체들에 자금난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화재 등 재난 상황에는 예외적으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아도 공사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소급 적용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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