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적 구금자 있어 韓 특정 아닐 수도
추방 땐 美 재입국 제한 등 불이익 우려
정부, 美로부터 사태 문제 정확히 못 들어
방미 조현, 행정 절차 등 고위급 소통 예정
외신 “트럼프, 자기 목표에 걸려 넘어져”
송언석 “무능 외교 책임 반드시 물을 것”
미국 조지아주 한인 무더기 구금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전원 자진출국 형태’ 귀국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사실상 추방으로 보는 정황이 포착돼 우려를 키우고 있다. 자진출국을 했다고 믿었는데 향후 미국 재입국 시 불이익이 적용되거나,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사태가 재발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불안이 감지된다.

9일 외교가에 따르면 전날까지만 해도 구금된 300여명 한인의 빠른 무사 귀국이 순조롭게 추진되는 상황이었다가 미 측 고위 인사의 발언으로 다시 기류는 불안정해졌다. 미국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이 8일(현지시간) 한국인 구금자 대부분에 대해 출국명령을 무시했고, 소수(a few)는 범죄활동에 연루돼 추방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다. 놈 장관은 “모든 기업이 미국에 올 때 게임의 규칙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도록 하는 훌륭한 기회”라며 한국인 대거 단속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다.
문제는 놈 장관이 언급한 ‘추방(deportation)’이라는 단어가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강조해 온 ‘자진출국’과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추방의 경우 자진출국과 달리 미국 재입국 제한 등 큰 불이익이 따른다. 자진출국이 아니라는 의미로 추방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자진출국을 추방으로 통칭한 것인지 등 놈 장관 발언의 의도는 불분명한 상태다. 체포된 475명 중 한국인은 300여명이고 다른 국적자도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을 특정한 발언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해당 발언을 포함해 제반 사항의 진위를 파악하고 있다는 입장이며 현재로서는 “구금된 국민 전원을 자진출국 형태로 가장 빠른 시일 내 귀국시키기 위한 세부 협의 진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는 아직 미 측으로부터 이번 사태의 문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인 답을 듣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출장비자로 알려진 B-1 미국방문비자를 적법하게 소지한 국민도 체포 인원에 포함된 것이 맞는지, 비즈니스 또는 관광 목적으로 받는 이스타(ESTA) 자격으로 들어온 경우 90일을 넘긴 체류가 문제인지 취업활동을 한 것이 문제인지 등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다.

이날 미국에 도착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우리 국민의 자진출국 관련 행정 절차를 비롯해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고위급에서 소통할 것으로 관측된다. 논란이 된 ‘추방’ 발언은 국토안보부에서 나온 것이고, 조 장관은 한·미 동맹 사안의 가장 중요한 정무적 역할을 담당하는 국무부와 긴밀한 제반 사항 소통에 나설 예정이다. 국토안보부가 추방 방침을 밝히더라도 대통령 행정명령 등을 가동해 우리 국민에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조지아 구금 한국인들은 미국에 거주할 욕망이 없었기 때문에 ESTA나 B-1 비자로 출장을 간 것이고, 미국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지 뺏은 것이 아니다”라며 “이들 중 자녀가 관광이나 유학 갈 때 제재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300여명의 고난도 기술자들이 이렇게 추방을 당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전 차관은 “불법 노동을 한 것이라면 공문을 보내 계도조치를 하고 돌려보내는 게 상식적인 절차”라며 “외교적 접근을 당연히 해야겠지만 이번 문제는 미국에 확실히 불만을 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미국 언론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과 외국 자본 유치 정책이 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충돌을 일으킨 사례로 지적됐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이번 사태를 “트럼프 행정부가 자기 목표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로 남부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불법이민자들을 강경하게 단속하면서도 외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추진해 온 모순이 결국 이렇게 충돌을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미국에 투자하는 아시아 기업이 공장 가동을 위해 필요한 인력에 대해 비자를 충분히 발급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민 관련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내에선 마치 석방을 이끌어낸 것처럼 자화자찬했지만, 실상은 추방이었다”며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호도한 기만행위가 국민적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국민과 기업의 안전을 끝까지 지켜내고 무능 외교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리얼미터가 전날 전국 만 18세 이상 508명을 대상으로 조지아주 한국인 구금 사태에 대해 물은 결과 59.2%가 ‘지나친 조치로 미국 정부에 실망했다’고 답했다. 전체의 30.7%는 ‘불가피한 조치로 미국 정부를 이해한다’고 답했으며, ‘잘 모르겠다’고 한 응답자는 10.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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