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FTA 계기 10년간 1조 조성 추진
내년 일몰 앞두고 누적 2756억원 그쳐
특별법에 민간 출연 의무 없어 ‘외면’
각종 인센티브 마련했지만 효과 미미
정부 불신 팽배, 대안 시급
농업계 “상생 의지 있는지 의문” 불만
FTA 재협상 가능성 속 갈등요인 부상
정치권 일몰 폐지 추진 등 활성화 나서
“범정부 차원 근본적 대책 필요” 지적 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농어업 피해 보상을 위해 조성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일몰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목표액의 30%도 채우지 못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금 출연의 주체인 FTA 수혜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탓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농어민을 속인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터져 나오며 ‘정부 신뢰’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기금 일몰 폐지와 더불어 실효성 제고 방안을 정부에 요청한 상황이다. 1조원 기금 조성이라는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데 더해 고령화로 소멸의 위기를 겪는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기금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선 기업의 기금 참여 의무 부재, 빈약한 인센티브 문제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0년간 ‘1조원’ 목표… 9년 누적 2756억원 그쳐
9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에 따르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상생기금)은 2015년 한·중 FTA 비준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가 기업의 무역 이득에 대한 손익 산정 및 보상 방안으로 조성됐다. 즉 피해가 예상돼 FTA를 반대하는 농어업계를 설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FTA를 통해 이득을 보는 기업의 이윤 일부를 공유하는 일종의 ‘무역이익 공유제’가 합의된 셈이다.
하지만 막상 기금 조성이 시작되자 기업이 소극적으로 참여하며 해당 합의는 ‘공수표’로 끝나가는 모양새다.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누적된 상생기금은 총 2756억원이다. 이는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조성하겠다던 기존 계획의 30%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내년이 기금 일몰 예정임을 고려하면 1조원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마저도 민간기업 참여분은 1153억2536만원으로 누적액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기금 조성에 가장 많이 기여한 곳은 공공기관(1595억8890만원)이며 그중에서도 FTA와 관련이 적은 발전 기업들이 주를 이뤘다. ‘무역이익공유’라는 취지는 사라지고 공공이 그 자리를 메웠지만 그마저도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기금 목표액 조성 실패의 배경에는 기업의 ‘기금 출연 의무 부재’가 자리한다. 상생기금 특별법에 따르면 ‘상생기금의 조성액 목표는 매년 1000억원’이며 ‘정부는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기업의 기금 출연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다.

◆통상 재정립 시기… 정부 불신, 협상 ‘걸림돌’ 돼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도 운용 중이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기업에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보다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이라는 더 매력적인 대안이 있는 까닭이다. 기업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할 경우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1년 동안 최대 1.5점의 가점을 받지만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할 경우 최대 2점의 가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기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농어촌에 지원금을 주는 거지만 대·중소기업상생협력기금의 경우 협력사에 지원한다는 점도 기업의 선호가 후자로 쏠리는 이유 중 하나다. 기업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농어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에 기여한 기업·기관을 홍보하는 ‘농어촌 ESG 실천인정제’를 2022년 시행했지만 실질적인 혜택이 미미해 내부에서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커져가는 불신이다. 가장 신뢰할 수 있어야 할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누구를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강순중 전국농민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당시에는 급하니까 이거저거 다 해준다고 했지만 막상 지나고 나서는 지켜지지도 않는다”며 “상생 의지가 있는지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한·미 관세협상, 현재 검토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등 이해관계 조정 문제가 산적한 지금 같은 시기에 정부에 대한 불신은 특히 치명적이다. 국익이 걸린 사안이 있더라도 특정 단체의 협조를 구하거나 설득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조연성 덕성여대 교수(국제통상학)는 “협상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중구조다. 대외적으로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대내적으로 불협화음이 날 경우 협상은 틀어진다”며 “트럼프 2기로 인해 무너진 FTA 질서가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세계적인 재협상 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농업계의 불신은 커다란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령화로 ‘농어촌 소멸’… 상생기금 필요성
전문가들은 정부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기금 조성 약속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물론 고령화로 소멸해가는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금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상생기금이 △관광명소 조성 △농어촌 학생 교육 프로그램 지원 △농어촌 이주 가구 정착 지원 등 농어촌 소멸 대응에 활용되고 있어서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소멸 위험지역은 전국 228곳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18곳이며 이 중 대부분이 농촌이다. 2000년대 400만명에 달하던 농가인구는 지난해 209만명으로 반 토막이 났고, 농가의 고령화율은 50%를 넘어섰다. 2000년 105곳에 그쳤던 인구 2000명 미만의 과소화 읍·면도 2020년에는 354곳으로 늘었다.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의 필요성이 높아지며 지난 6월 정치권에서는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활성화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상황이다. 유명무실한 상생기금 제도의 관련법을 정비하고 제도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정부와 국회가 적극 협력하자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농림축산식품부 및 농어업협력재단 관계자 등과 국회 결의안 통과 이후 정부의 후속 대책 논의 계획과 방향에 대해 점검했다”며 “법안이 아닌 결의안을 발의한 취지는 기금이 유명무실하게 된 것에 대한 정부 차원의 맹성(매우 깊이 반성함)과 함께 일몰제 폐지, 기금 활성화 등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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