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인데 “미술작품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준으로 보면 충격적이고 끔찍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고야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에 감동하고 극찬의 평가를 내렸을까.
미술작품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18세기 고전주의에 이르러 예술과 미의 등식으로 이론화됐다. 하지만 규칙과 원리를 강조했던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낭만주의가 등장하면서 미술작품을 대하는 관점에 변화가 나타났다. 아름다운 것만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추한 것이나 끔찍한 것도 예술가가 어떻게 나타내느냐에 따라 훌륭한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이런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고야의 이 그림도 탄생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족의 막내 사투르누스(그리스신화 크로노스의 로마식 이름) 얘기다. 아버지 우라노스가 자식들에 무관심하고 학대까지 하자 사투르누스가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 바다에 던져버리고 최고신의 위치로 등극한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그도 역시 자신의 아들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잔혹한 모습이다.
말년의 고야가 부인이 죽고 귀도 먹자 ‘귀머거리의 별장’이라 불린 곳에 칩거하면서 그림 그리던 시절의 작품이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 느꼈던 인생무상과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그리스신화에 빗대서 표현했다. 인간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사악함과 잔혹함을 사투르누스의 불안함이 가득한 광기 어린 눈으로 묘사했다. 사투르누스의 심리상태가 명암 대비와 일그러지고 불균형적인 형태인 낭만주의 방식과 잘 어울리게 했다.
시간을 상징하는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는 것이 시간이라는 아버지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잡아먹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다.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게 사라진다는 교훈이고, 지금에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