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저수지 평년 저수율의 21.1%
수도 계량기 75% 잠가 제한 급수
50㎜ 이상 비 안 오면 24일 ‘고갈’
10일까지 영동지방 비 예보 없어
국가소방동원령 발령해 ‘물 공급’
강원도, 재난안전 2단계로 격상
“뉴스로만 가뭄 소식을 접하다가 실제로 현장에 와보니 훨씬 심각해 보여 마음이 아픕니다.”

국가 재난사태 선포와 국가소방동원령에 따라 강원 강릉에 지원을 나온 경기 포천소방서 소속 권찬주 소방위는 31일 이같이 말했다. 강릉시는 사상 최악의 가뭄 사태로 일상 및 산업 활동이 거의 멈춘 상태다. 이날 오전 기준으로 지역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5%대가 무너졌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40분쯤 저수율은 14.9%로, 전날 15.3%에서 0.4%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평년 저수율(70.7%)의 21.1%에 불과한 수준이다.
오봉저수지는 강릉시 생활용수의 87%를 차지한다. 식수 공급의 ‘마지노선’이 무너지자 강릉시는 수도계량기 75%를 잠가 제한 급수 강도를 높였다. 앞서 강릉시는 저수율이 25% 밑으로 내려가자 5만3485가구의 계량기 50%를 잠그는 제한 급수를 시작했다. 이어 저수율이 15%대에 접어들자 공무원과 이통장이 대상 세대를 방문해 절수 안내에 나섰다.

농업용수 공급은 이미 중단했다. ‘3일 공급·7일 제한’ 방식에 따라 23일부터 7일간 이어진 공급 제한기간이 지난 뒤 30일부터 공급이 재개됐어야 하지만, 저수율이 급감해 중단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오봉저수지의 총 저수량은 1433만t. 하지만 올 들어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현재 유효 저수량은 총 저수량의 7분의 1 수준인 213만5000여t으로 급감한 실정이다. 만약 50㎜ 이상의 비가 오지 않으면 오는 24일쯤 오봉저수지의 물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30일 강릉에 국가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불·기름 유출 등 사회재난이 아닌 자연재해로는 사상 첫 사례다. 재난사태는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 최소화를 위해 선포하는 긴급조치로, 선포 시 인력·장비·물자 동원, 응급 지원, 공무원 비상소집 등 조치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진다.


재난사태 선포와 더불어 국가소방동원령도 발령됐다. 31일 강릉 강북공설운동장에는 강원도 내 소방차 20대와 타 시·도에서 지원을 나온 소방차 51대 등 71대의 차량이 집결했다. 강원도소방본부는 이들 소방차를 이용해 동해·속초·평창·양양 등 4개 시·군에서 하루 2500~3000t의 물을 취수해 강릉 도심에 식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홍제정수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경북 봉화소방서 소속 김진우 소방사는 “날씨가 매우 더워 급수 지원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가뭄에 급수 지원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오늘 5번 정도 왕복할 예정이지만 가능하다면 한 번이라도 더 하겠다”고 말했다. 김승룡 강원도소방본부장은 “전국에서 동원되는 소방 자원이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가동했던 강원도는 이날 2단계로 격상 가동했다. 도 행정부지사가 본부장을 맡는 2단계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는 수준이다. 시민들은 앞장서 물 절약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시민들은 빨래를 자제하고 물티슈로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심지어 변기 물까지 아껴가며 절수에 동참하고 있다. 임당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고모씨는 “음식조리와 설거지에 물을 아끼긴 어렵지만, 화장실 변기에 벽돌을 넣는 등 소소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업을 선언하거나 점심 영업만 하는 식당도 있다. 농가 피해는 더 심각하다. 가뭄으로 배추 속이 썩는 ‘꿀통배추’가 늘면서 출하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했고, 옥수수·고추·깨 등 밭작물도 바싹 말라 죽어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춘천시는 25일부터 하루 166t, 태백시는 한 달간 하루 46t을, 홍천군은 29일부터 닷새간 하루 75t을 급수 지원키로 했다. 자매도시 보령시는 29일 500㎖ 생수 4만2208병을, 강원도의회는 2ℓ짜리 생수 1만병을 전달한 데 이어 서울시는 1일 2ℓ 아리수 1만7000병을 지원할 예정이다.
당분간 가뭄은 계속될 전망이다. 기상청 최신 중기예보를 보면, 강원 영동에 10일까지 비 예보가 없다. 5∼6일 수도권과 강원 영서에 비가 내리겠지만 강원 영동 등 나머지 지역은 흐리기만 할 가능성이 크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