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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새둥지 ‘쪽방촌 슈바이처’… “노숙인 치료 온 힘”

입력 : 2025-08-31 18:53:39 수정 : 2025-08-31 22:16:57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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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간 무료 진료 요셉의원
‘재개발’ 영등포 떠나 진료 재개
4평 공간 금세 환자들로 가득
“정말 고마운 곳” 입 모아 감사

“환자분, 제가 아프지 않게 도와드릴게요.”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한 병원의 내과 진료실. 혈압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찾아온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진료가 끝난 뒤 환자는 따로 수납을 하지 않고 곧장 약국에서 처방약을 받았다. 역시나 돈은 내지 않았다. 이곳은 진료비와 약값을 한 푼도 받지 않는다. 40년 가까이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온 ‘요셉의원’이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1세대 무료 병원인 요셉의원이 29일부터 서울역에서 정식 진료를 재개했다. 요셉의원은 관악구 신림동과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지난 38년간 70만명을 치료했다. 그러다 올 여름 재개발이 이뤄지는 영등포를 떠나 서울역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한 달간의 시범진료기간 동안 하루 평균 환자 60~100명이 찾아왔다.

정식 진료 첫날인 이날은 내과, 치과, 비뇨기과 3개 과에서 저녁 시간에만 진료를 실시했다. 오후 7시쯤부터 두 시간여 동안 환자 30여명이 방문했다. 이날 진료에는 고영초 원장(건국대 명예교수, 신경외과 전문의)과 2년째 의료봉사 중인 양현숙 건국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 등 의료 봉사자들이 환자를 맞았다.

4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놓인 8개 의자는 금세 환자들로 가득 찼다. 디지털 무늬 군복에 군용 모자를 눌러쓴 50대 김만용(가명)씨는 짐을 한가득 실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가장 먼저 진료실에 들어갔다. 혈압에 문제가 있다는 김씨는 서울역 인근 거리에서 생활한다. 그에게 의료급여 수급 여부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약값이 너무 비싼데, 여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곳”이라고 말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씨처럼 병원비 부담을 크게 느낀다. 2012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노숙인 의료 지원을 명시하고 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실질적 도움은 제한적이다. 노숙인이 의료급여를 신청하려면 노숙인 보호시설 등에서 3개월 이상 노숙·쪽방 생활 확인, 건강보험 미가입 또는 6개월 이상 보험료 체납, 질병·부상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 필요성 등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급여 수급을 포기한 노숙인들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거리 노숙인의 52.5%는 아플 때 병원에 가지 않으며, 이 중 85.3%가 병원비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이날 만난 환자들은 요셉의원 같은 무료 의료기관의 존재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 원장은 “서울역으로 옮겨오면서 더 많은 노숙인 환자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며 “인근 노숙인 봉사센터와도 연계하고 있다”고 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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