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발레단이 창단 1주년을 맞아 뜨거운 에너지와 차가운 열정이 공존하는 더블 빌 무대(세종M씨어터,22∼27일)를 선보였다. 안무가 유희웅의 ‘노 모어’와 한스 판 마넨의 ‘5 탱고스’로 구성한 더블 빌 무대로 우리 시대 청춘의 몸부림과 세련된 관능미를 선보이며 신생 발레단의 성취를 입증했다.


‘노 모어’는 주말은 사라지고 빡빡한 ‘먼데이’만 되풀이되는 일상 속 한 젊은이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한 편의 무용극이었다. 심장 고동소리만큼 강렬한 비트 음악에 맞물린 춤이 탁월한 동시대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대 한 편에서 펼쳐지는 드럼 연주에 맞춰 무용수들은 무대 위를 끊임없이 달리고 일어섰다. 주인공은 피곤한 몸을 뉘운 침대에서 끌려가다시피 일어서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종국에는 벽을 뚫고 나가며 날것 그대로의 젊은 에너지를 보여줬다. 지난해 서울시발레단 초연작을 더욱 발전시킨 무대였다.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장면을 추가해 작품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며 ‘시대와 호흡하는 컨템포러리’를 추구하는 서울시발레단만의 색깔을 충분히 드러냈다.

‘5 탱고스’는 탱고 특유의 리듬과 형식을 차용한 네오 클래식 발레가 발산하는 절제된 열정이 인상적인 무대였다. 거장 안무가 한스 판 마넨이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에 맞춰 2주만에 안무를 완성했다는 작품이다. 1977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초연된 명작으로서 아시아에서 공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용수 시선이 자유로운 발레 무대와 달리 이 작품에선 남녀무용수가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새로운 긴장과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손을 골반에 갖다 대는 등 탱고 특유의 팔 동작과 손짓으로 여성 무용수가 만들어낸 관능미도 인상적이었다. 춤의 정확성, 선의 아름다움과 완벽한 대칭이 시종 이어지면서 초반에는 단순했던 무대가 후반부로 갈수록 깊이가 더해지며 보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공연계도 흥행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척박한 풍토’가 기본값이었던 무용쪽은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 공연 건수나 티켓 판매액 모두 늘어난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티켓판매액이 52%나 늘어났다.(KOPIS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

특히 현대무용 티켓판매액이 186%나 증가했는데 서울시발레단 활약도 한 몫을 차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스 판 마넨 작품은 물론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 요한 잉거의 ‘워킹 매드& 블리스’ 등 해외 거장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유회웅 등 우리나라 젊은 안무가 작품으로 컨템포러리 관객을 계발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 역시 ‘동시대적인 성찰과 사유를 담은 과감하고 대담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발레의 혁신을 일구어 가겠다’던 서울시발레단의 약속이 지켜진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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