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크기의 거미가 전시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먹이를 잡으려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인지, 재빠르게 도망치려고 숨을 고르는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위협적이다.

‘거미 작가’로 잘 알려진 현대미술의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웅크린 거미’다.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어릴 때 직물공예 작업장에서 실을 만지던 어머니의 모습이 거미줄로 집을 짓는 거미와 연결됐다. 거대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몸집에 비해 가는 다리가 주는 이중성은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하지만, 동시에 버리기도 하는 존재라는 양가감정을 표현한다.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은 내년 1월4일까지 부르주아의 대규모 회고전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을 개최한다. 국내에서 열리는 부르즈아의 최대 규모 미술관 회고전으로 회화, 조각, 설치 등 106점의 작품을 아우른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을 비롯해 삼성문화재단 소장품 13점과 해외 주요 기관·개인 소장품이 포함된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번 전시는 25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전시로, 국내에서 소개된 전시 중 가장 감동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며 “초기 회화에서 말년의 섬유 작업에 이르기까지 70여년에 걸친 창작 여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흥과 깊은 예술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린 시절의 기억, 사랑, 두려움 등 가족으로부터 느낀 긴장과 갈등, 트라우마를 통한 내면의 균열이 작가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다. 전시 제목 ‘덧없고 영원한’도 작가가 생전에 쓴 글을 차용한 것이다. 부르주아의 작품이 갖는 양면성은 상당 부분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비롯됐다. 부르주아의 유년기 시절 아버지는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질렀고, 어머니는 침묵했다. 부르주아가 21살일 때 어머니가 질병으로 숨을 거두자, 그는 어머니를 무척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을 빨리 떠나버린 것을 원망했다고 한다.

작가의 1947년 작품 ‘아버지의 파괴’는 가부장적 아버지에 대한 상상적 복수를 무대로 연출했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가족의 감정을 식탁 위의 갈기갈기 찢긴 살점들과 섬뜩한 붉은 조명을 통해 표현해냈다. 작가는 생전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식탁에서 아버지의 자기과시에 지친 가족들이 그를 끌어내려 사지를 찢고 먹어 치우는 상상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내려오는 길에 작가의 후기작 ‘커플’을 다시 만나게 된다. 공중에 매달린 알루미늄 나선이 서로 얽히며 융합을 시도한다. 부르주아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나선은 그 자체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감정이 소용돌이를 일으킨 형태로, 내면의 균형 욕망을 동시에 드러내면서도 충동을 화해시키고 통합하려는 궁극적인 욕구를 상징한다. 평생 양가 감정으로 힘들어 하던 작가가 결국에는 그 둘의 이상적인 결합을 추구하며 자신을 치유했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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