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 이어 HF도 대출보증 강화…역전세난 우려 커져, 비아파트 시장 ‘직격탄’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정부 후속 대책이 정작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를 압박하는 ‘이중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이어 한국주택금융공사(HF)까지 대출 보증 심사에 '공시가격 126% 룰'을 도입했다. 비(非)아파트 시장을 중심으로 전세 거래가 급속히 얼어붙는 분위기다.
◆‘서민 보호’ 명분이 만든 또 다른 사각지대
31일 HF가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은행재원 일반보증과 무주택 청년 특례보증 심사 기준에 ‘공시가격 126% 룰’이 적용됐다.
보증 대상 주택의 선순위 채권과 임차보증금 합계가 공시가격의 126%를 초과할 경우 보증 승인 자체가 거절된다.
지난해 5월 HUG가 도입한 기준과 동일한 것이다. 사실상 HF까지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서 시장에서는 전세대출의 ‘이중 봉쇄’가 시작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존에는 HF가 임차인의 신용평가 중심으로 심사해 보증금액이 2억원을 초과할 경우에만 주택가격과 선순위 채권을 제한적으로 고려했다.
이번 조치로 보증금 규모와 무관하게 공시가격 140%에서 산정된 대출 한도 기준이 일괄 적용된다.
문제는 HUG 보증이 막힌 다세대·연립주택 등의 시장에서 HF 보증이 그나마 유일한 ‘우회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그마저 막히면서 전세 거래 자체가 중단되고, 임대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지 못해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역전세난’ 신호…“제도는 있는데 사람은 못 산다”
이미 현장에선 거래 절벽과 함께 세입자와 임대인 양측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올해 들어 갱신계약 외에 신규 전세 계약은 거의 없다”며 “대출이 안 되니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김모 씨도 “내년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이사 가고 싶어도 보증금 대출이 안 돼 선택지가 없다”고 토로했다.
◆“착한 임대인·임차인만 고통”…금융 전문가들도 비판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 강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률적 기준이 되레 시장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금융 전문가는 “공시가격 126% 룰은 실거래가와 괴리가 큰 비아파트 시장에 과도한 규제로 작용한다”며 “정상적인 임대차 거래마저 위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관들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대체 보증 수단이 사라진 시장에서는 사실상 전세대출이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 신규 임차인이 유입되지 못하고, 기존 보증금 반환이 지연되며 역전세난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 “실거래 반영 방식 개선 시급”
정치권도 문제 해결을 위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박 의원은 “정책의 본래 취지는 전세사기 예방이지만, 급격한 규제 강화는 오히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HF의 주택가격 산정 방식을 공시가가 아닌 실거래가 중심으로 개선하고,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적인 접근이 없다면 제도는 종이 위의 장치에 불과할 뿐이며,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임차인과 임대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 규제가 부른 역설…현실과의 거리 좁혀야
정부는 ‘전세사기 근절’이라는 명분 아래 제도를 강화했다. 현실과 괴리된 일률적 기준이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공시가격이 아닌 실거래가 중심의 주택가격 산정 방식 도입, 지역·유형별 탄력적 적용, 취약 계층에 대한 별도 예외 조항 마련 등 다층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선한 의도’가 ‘구조적 피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의 목적뿐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한 냉철한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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