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기자가 군 복무를 한 부대의 본부는 3층 건물이었다. 남자 화장실이야 층마다 있지만, 여자 화장실은 2층에 딱 하나뿐이었다. 당시는 부대에 여성 장교나 부사관이 한 명도 없을 때였다. 군무원 중 여자가 있긴 했으나 그 숫자는 10명도 채 안 됐다. 그러니 여자 화장실을 층마다 설치하지 않은 것을 나무라긴 어렵다는 생각이다. 요즘 군대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 시절 화장실 청소는 병사들 몫이었다. 아니, 이는 남자 화장실에 국한한 얘기일 뿐이다. 병사들이 여자 화장실까지 청소하는 것을 그 어떤 여성 군무원이 반기겠는가. 여자 화장실은 여성 군무원들끼리 순번을 정해 1주일씩 돌아가며 청소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2002년으로 기억된다. 부대에 여성 장교가 부임했다. 간호장교가 아닌 다른 병과(兵科)의 여성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몇 달 지나 여자 군무원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A 소위도 우리와 똑같이 화장실을 이용하니 그도 청소 당번표에 넣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경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같은 내용이 부대 지휘부에도 전달이 되었던 것 같다. 현역 장성인 부대장을 비롯한 고위 장교들은 “장교한테 화장실 청소를 시키겠다니, 말이 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자연히 A 소위를 화장실 청소 순번에 포함시키는 방안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며 ‘역시 사람 사는 곳에선 성별보다 계급이 더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성별이 계급을 앞설까.
느닷없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전수안(73) 전 대법관이 최근 펴낸 책 ‘지문 하나 남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은빛)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5년 12월 한국젠더법학회 창립을 축하하며 초임 판사 시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1978년 9월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명되었는데, 여성 전용 화장실이 없어 곤욕을 치렀습니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법원이었는데, 남녀가 구분되지 않은 화장실뿐이었습니다.” 전 전 대법관은 “그때 비로소 여성 법관 세 사람의 요청에 의해 여성 화장실을 분리, 설치하는 공사를 하게 되었다”며 “그 후 저는 가는 곳(법원)마다 그 법원에서 처음 구경하는 여성 판사인 동시에 화장실 개조를 하게 만드는 비용이 많이 드는 판사였다”고 회상했다. 참으로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1년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이 탄생하며 비로소 최고 사법기관에 여성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취임 후 12년간 갑자기 볼일이 급할 때 개인 화장실이 있는 집무실까지 달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5년 지어진 대법원 건물은 원래 여자 화장실이 적은 데다 대법관들이 변론을 위해 법정에 입장하기 전 법복으로 갈아입는 탈의실 부근엔 아예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1993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대법원에 입성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여성 대법관이 힘을 합쳐 “당장 화장실 보수공사를 시작하라”고 압박하자 대법원장 지시로 탈의실 부근에도 여자 화장실이 생겼다. “아들만큼 딸의 생명도 귀한 것이고, 아내와 어머니에게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전 전 대법관의 충고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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