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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한국 상륙? 준비자산·발행 주체 ‘빅게임’ 시작됐다 [더 나은 경제, SD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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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6 14:36:30 수정 : 2025-08-26 14: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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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인 서클(Circle)의 히스 타버트(Heath Tarbert) 총괄사장이 지난 21일 방한해 국내 금융권과 가상자산업계를 잇달아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된다면 적극 지원하고 싶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 국내 제도화 논의에 힘을 실었다. 특히 ‘테라·루나 사태는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적 가치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투명한 준비자산과 규제 체계를 갖춘 스테이블코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화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버트 사장은 방한 직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예방한 데 이어 신한·국민·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회장단과도 연쇄 면담을 가졌다. 그는 면담 자리에서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사가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준비자산 관리에 참여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며 은행권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업계는 타버트 사장의 연쇄 면담을 두고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정책·산업 연합전선의 서막”이라고 평가했다는 전언이다.

 

가상자산업계와의 접촉도 활발했다. 타버트 사장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등 국내 주요 거래소 대표들을 만나 USDC 유통 확대 방안을 논의했고, 몇몇 거래소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동 연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업계에서는 USDC의 국내 활용 범위가 단순 상장을 넘어 결제·송금·자산토큰화(STO) 정산 등 실사용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타버트 사장은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경제와의 대담에서 그는 “한국은 기술 수용성이 높고 디지털 금융혁신에 적극적이어서 스테이블코인이 성장하기에 최적의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조선비즈 인터뷰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야말로 미래금융 인프라의 핵심이며, 은행·거래소·빅테크가 참여하는 삼각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과정에서 국내외 민간 발행사 간 전략적 제휴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수장이 이처럼 국내 주요 거래소와 은행, 빅테크를 연쇄적으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개념 수준을 넘어 구체적 설계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USDC는 가상자산 시가총액 기준 세계 2위 규모다. 이번 방한에서 타버트 사장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4대 금융 및 대형 빅테크 기업과의 미팅을 차례로 진행한 데 대해 업계는 ‘이번 방문이 시장 레벨의 협력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준비자산 설계, 상장 확대, 결제·정산 등 실무 과제가 대거 테이블에 올라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가 국내 제도화 논의의 핵심 쟁점이다. 미국은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통해 발행액 전액을 현금 또는 단기 국채로 담보하도록 규정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한국은행은 이와 관련해 단기 국고채의 신규 발행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이미 존재하는 통화안정증권(91일물)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한은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을 위해 단기 국고채를 따로 발행하는 것은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며 “통안증권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준비자산 운용을 놓고 재정·통화·금융감독 당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 은행·빅테크·외국계 발행사가 어떤 구조로 준비자산을 관리할지 제도화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민간 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네이버·카카오·토스는 각각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스테이블코인 도입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거래소와의 협업, 상표권 출원, 내부 검토 작업 등이 진행 중이다.

 

은행권에서는 신한금융이 가장 앞서 있다. 신한은 그룹 차원에서 PoC(기술검증)를 진행했으며, 전 계열사에 적용할 수 있는 결제·정산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카드·증권·커스터디(수탁)·가맹점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선제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발행할 수 있나’다. 현재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은행 주도 발행 △은행·빅테크 공동 발행 △외국계 발행사와의 전략 제휴 등이다.

 

은행 주도 모델은 통화정책 파급 경로와 금융 안정을 고려할 때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빅테크는 이미 결제·간편송금·마켓플레이스를 기반으로 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단독 또는 거래소와 협업한 발행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은행 커스터디+빅테크 유통’ 구조가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된다면 결제, 정산, 국경 간 송금, 자본시장 정산에 혁신이 올 것으로 내다봤다. 온라인 쇼핑, 구독 서비스, 디지털 콘텐츠 구매 등에서 결제와 환불이 신속해지고, 가맹점 수수료 부담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업간거래(B2B)에서 대금 결제가 ‘D+N’에서 실시간으로 바뀌며, 현금흐름 관리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급여 지급, 프리랜서·크리에이터 보상 등에서 수수료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채권·토큰증권(STO) 정산에도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면 발행비용을 40% 이상 줄이고, 결제 주기를 분 단위로 단축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타버트 사장의 이번 방한은 한국 스테이블코인 논의를 기존 ‘콘셉트’에서 ‘실행 설계’ 단계로 끌어올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준비자산·발행 주체·감독·자금세탁방지(AML) 체계라는 네가지 축이 견고히 세워진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정산·송금·자본시장을 아우르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화가 지연되면 국내 시장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우려가 있다. “어디서,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과 “누가 책임지고 담보할 것인가”라는 거버넌스 정답을 찾는 것이 지금 한국 시장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유가증권(코스피·KOSPI) 시장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옴부즈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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