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예인선이 정박해 있는
부두가 보였다
그는 취한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부두로 걸어 나갔다
나는 니가 상상한 존재일 뿐이야
나는 너를 상상한 적 없어
너는 니가 상상하지 않았다고 상상하는구나
창밖으로 예인선이 사라진
텅 빈 부두가 보였다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모래 운반선이 느리게 부두를 향해 다가왔다

얼마 전 항구가 있는 소도시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의 커다란 창 너머 바다가 펼쳐졌다. 부두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배들이 여럿 정박해 있었다. 홀린 듯 나가 한참 동안 비 내리는 항구 주변을 걸었다. 우산 아래 나 역시 이런저런 혼잣말을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흐린 풍경 속에서 오래 그리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보고는 몇장의 사진을 찍었는지도.
시 속의 취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근사한 예인선 한 척. 멈춰 있는 자신을 이끌고 멀리 떠날 존재. 어디로든 데려갈 존재. 그러나 그것은 다만 상상이었을까. 바람이었을까. 부두는 텅 비어 있을 뿐. 시간이 지난 뒤 부두에 당도한 것은 한 척의 운반선. “모래 운반선이 느리게 부두를 향해 다가왔다”라는 마지막 대목은 갖가지 해설을 더하게 한다.
내가 여행 끝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듯 그 또한 왔던 곳으로 편히 돌아갔으리라 믿는다.
박소란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