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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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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5 22:56:14 수정 : 2025-08-25 22: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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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

창밖에 예인선이 정박해 있는

부두가 보였다

 

그는 취한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부두로 걸어 나갔다

 

나는 니가 상상한 존재일 뿐이야

 

나는 너를 상상한 적 없어

 

너는 니가 상상하지 않았다고 상상하는구나

 

창밖으로 예인선이 사라진

텅 빈 부두가 보였다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모래 운반선이 느리게 부두를 향해 다가왔다

얼마 전 항구가 있는 소도시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의 커다란 창 너머 바다가 펼쳐졌다. 부두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배들이 여럿 정박해 있었다. 홀린 듯 나가 한참 동안 비 내리는 항구 주변을 걸었다. 우산 아래 나 역시 이런저런 혼잣말을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흐린 풍경 속에서 오래 그리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보고는 몇장의 사진을 찍었는지도.

 

시 속의 취한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근사한 예인선 한 척. 멈춰 있는 자신을 이끌고 멀리 떠날 존재. 어디로든 데려갈 존재. 그러나 그것은 다만 상상이었을까. 바람이었을까. 부두는 텅 비어 있을 뿐. 시간이 지난 뒤 부두에 당도한 것은 한 척의 운반선. “모래 운반선이 느리게 부두를 향해 다가왔다”라는 마지막 대목은 갖가지 해설을 더하게 한다.

 

내가 여행 끝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듯 그 또한 왔던 곳으로 편히 돌아갔으리라 믿는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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