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네일 VS 제환유.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와 두산의 2025 KBO리그 맞대결 선발 매치업이다. 네일은 지난해 KBO리그에 입성해 12승5패 평균자책점 2.53으로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10개 구단 통틀어도 최고 수준의 에이스. 네일은 올해는 승운이 따르지 않아 승패는 7승2패에 그치고 있지만, 평균자책점은 2.15로 2위에 올라있다. 투수 부문 4관왕에 도전 중인 코디 폰세(한화)에 가려서 그렇지 올해도 네일은 최고의 외인 에이스다.
반면 제환유는 이날이 프로 데뷔 후 첫 선발 등판 경기였다. 불펜으로 1군 등판한 것도 2023년의 1경기, 올해 2경기가 전부인 그야말로 철저한 무명이다. 공주고를 졸업해 2020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 19순위, 상위 순번으로 뽑혔으나 프로에서는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데뷔 시즌인 2020년엔 1군 등판 없이 그해 12월에 군에 입대했고, 2022년 6월에 제대 했지만, 퓨처스리그 등판 기록조차 없었다. 2023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에 딱 한 경기에 등판했고, 퓨처스리그에서도 2승3패 평균자책점 8.70에 그칠 만큼 성장은 정체되었다. 지난해에도 1군 등판 기록은 전무하고 퓨처스리그도 2경기 등판에 그쳤다. 팀 선배였던 오재원의 마약 투약 사건에서 대리처방에 연루돼 퓨처스리그조차 소화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골리앗 대 다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던 이날 경기. KIA의 우세를 점치는 전망이 훨씬 우세했지만, 제환유는 이러한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인생투’를 펼치며 두산의 승리에 밑거름이 됐다.
생애 첫 선발 등판이라 떨렸을까. 제환유는 1회부터 흔들렸다. 첫 타자 고종욱은 1루수 땅볼로 처리했으나 박찬호에게 볼넷, 김선빈에게 안타를 맞고 1사 1,3루에 몰렸다. 최형우에게 희생 플라이를 맞아 한 점을 내준 제환유는 나성범과 위즈덤에게 연속 볼넷을 내주고 2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오선우를 2루 땅볼로 잡아내며 실점은 최소화했지만, 그 누구도 제환유가 5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환유는 2회부터 달라졌다. 5회까지 3회 안타 1개를 맞은 것을 빼면 2,4,5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네일과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다. 최고 시속 149㎞를 찍은 포심 패스트볼(45구) 위주의 투구가 시원시원했다. 슬라이더(13구), 커브(7구), 포크(6구)를 고루 섞어 던진 제환유는 탈삼진은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지만, 5이닝 동안 피안타 2개, 볼넷 3개만 내주며 KIA 타선을 단 1점으로 묶어냈다. 6회부터는 마운드를 박신지에게 넘겼다.
제환유가 예상을 깨고 5회까지 1실점으로 버텨준 것은 두산의 8회 대역전극의 발판이 됐다. 네일에게 7회까지 산발 안타 6개만 때려내며 무득점에 그쳤던 두산 타선은 네일이 내려가고 KIA 불펜이 가동된 8회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좌완 이준영을 상대로 선두타자 강승호가 안타를 때려내며 포문을 열었고, 케이브의 땅볼 때 선행주자가 잡히며 1사 1루가 됐다. 타석엔 우타자 양의지. KIA 벤치의 선택은 불펜진 중에 가장 믿음직한 투수인 우완 전상현. 그러나 양의지는 2루타로 1사 2,3루 기회를 만들어줬고, KIA 벤치는 안재석을 고의4구로 거르며 만루작전을 걸었다.


두산 벤치도 맞불을 놨다. 대타로 김인태 카드를 냈다. 김인태는 전날 2-3으로 뒤진 9회 1사 만루에서 대타로 나와 경기를 끝내는 2타점 2루타를 때려낸 ‘대타 전문 타자’다. 전날 끝내기 2루타의 잔상이 전상현의 머리를 지배한걸까. 전상현은 김인태에게 동점 밀어내기를 내줬다. 전상현은 후속타자 류현진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1-1 동점에서 불을 끄나 싶었지만, 조수행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고 무너졌다. 사흘 연속 경기 후반 역전패 위기에 몰리자 팀 수비의 중심인 포수 김태군도 흔들렸다. 1루 주자 조수행의 도루 때 유격수나 2루수가 2루 베이스에 커버도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2루 송구를 했고, 이 송구는 그대로 외야로 빠졌다. 그 사이 3루 주자 박계범은 여유있게 홈을 밟으며 4-1이 됐다. 사실상 쐐기 득점이었다.
전날까지 마무리 김택연에게 3연투를 시킨 조성환 감독대행은 전날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한 우완 김정우를 9회 마운드에 올렸다. 김정우는 김태군에게 솔로포를 맞긴 했지만,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삼진으로 솎아내며 사흘 연속 대역전승을 마무리했다.

이날 승리의 밑거름이 되어준 제환유는 경기 후 “대체 선발로 들어간다고 지난 주말 얘기를 들어서 준비할 시간이 길었다”며 “누구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잡아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운동에 집중했다”고 호투 소감을 밝혔다. 이어 “1회 너무 흔들렸는데, 감독님께서 ‘쫄지 말아라’라고 해주셔서 기죽지 않고 던졌다. 2군 경기에 비해 부담을 느껴서인지 변화구 제구가 잘 안됐지만 포수(김)기연이 형이 리드를 잘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면서 “만원 관중 함성을 처음 들었는데 정말 짜릿했고, 그 함성을 더 자주 듣고 싶다”고 앞으로 선전을 다짐했다.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은 “제환유 투구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1회 위기를 넘긴 뒤 그야말로 최고의 투구를 해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KIA와 3연전에서 퓨처스 선수들의 공이 컸다. 접전에서 그 선수들이 눈부신 활약을 해줬다. 세밀하게 지도해주신 2군 코칭스태프와 전력 파트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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