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모든 공공건축물에 도입
추가 비용 든다며 ‘엄살’ 떨지만
기후 위기 속 선택이 아닌 필수
날씨가 참 덥다. ‘올해는 유난히 더운 것 같다.’는 말을 들은 게 여러 해이고 보니 이제 으레 그러려니 한다. 한낮 기온이 사람의 체온을 넘나든다. 하늘에서는 태양열이 내리쬐고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바닥에서는 태양열에 달구어진 열기가 이글거려 거리를 걸으면 뜨거운 공기에 휩싸인 듯하다. 거의 모든 집에 에어컨이 있고 카페를 비롯해 공공장소 어디를 가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있으니 거리로 나오면 상대적으로 더 덥게 느껴진다.
주변을 살펴보면 매년 더워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즐비하고 거의 모든 건물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다. 자동차 배기구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바람이 여름의 태양열에 더해지니 기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기온이 올라가니 너도나도 에어컨을 찾게 되고 에너지 사용량이 많아지니 바깥 온도는 점점 더 올라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고자 정부는 이른바 ‘제로 에너지 건축물’에 관한 등급 기준을 만들어 2020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부터 연차적으로 민간 건축물까지 그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197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에너지 사용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TOE(Tonne of Oil Equivalent, 석유 1톤이 내는 에너지양) 기준으로 1970년 약 0.5TOE, 1980년 약 1.1TOE, 1990년 약 2.7TOE, 2000년 약 4.4TOE, 2010년 약 5.5TOE, 2020년 약 5.3TOE, 2022년 약 5.1TOE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농업 중심 사회여서 에너지 소비가 극히 낮았으나, 그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가정에 보급되자 에너지 사용이 급증했다. 2022년 기준으로 주요 국가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을 살펴보면, 미국이 약 6.7TOE, 프랑스가 약 3.7TOE, 독일이 약 3.6TOE, 일본이 약 3.4TOE, 중국이 약 2.5TOE이고 세계 평균은 약 1.8TOE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 사용에 있어 대형 주택과 자동차 중심 문화를 가진 미국 다음으로 세계 최상위권이어서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 도입을 제도화하는 정당성이 여기에 있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은 건축물의 단열 성능을 강화하고 냉난방과 조명 등에 필요한 에너지는 건축물 자체에서 생산하는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할 필요가 없거나 최소화한 건축물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은 에너지 자립률 100% 이상인 ‘1등급 제로 에너지 건축물’부터 20% 이상인 5등급까지 다섯 단계의 등급을 정해 2030년부터는 모든 신축 공공건축물은 1등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건축물의 단열 성능을 높일수록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으니 태양광 발전 등으로 약간의 신재생 에너지만 자체적으로 생산하면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제로 에너지 건축’에서 건축물의 단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과 유사한 개념으로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가 있다. 실내 온도 조절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여 냉난방하는 집을 ‘액티브 하우스(Active House)’라고 할 때 그 반대편에 있는 집이 ‘패시브 하우스’다. ‘제로 에너지 건축’이 단열과 함께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 생산한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하는 데 비해 ‘패시브 하우스’는 냉난방 장치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높은 수준의 단열과 함께 집을 남향으로 배치하고 가변식 차양을 설치해 여름에는 최대한 태양열의 유입을 억제하고 겨울에는 태양열의 유입을 극대화한다. 또한 ‘열 회수 환기 장치’를 설치해 오염된 실내 공기를 배출하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유입함과 동시에 배출 공기와 유입 공기 상호 간 열과 수분 교환을 통해 실내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중학교 수준의 물리학 지식에 의하면 열은 전도, 대류, 복사로 전달된다. 이 세 가지 경로를 통한 건축물 실내외 열의 이동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단열의 핵심 원리다. 이를 위해 열의 전도를 최소화한 단열재를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에 사용하고 찬 공기와 더운 공기의 대류를 방지할 수 있게 창문과 문의 기밀성을 높인다. 복사열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표면처리된 유리와 알루미늄 포일 등 반사 재료를 사용한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시공의 정밀도를 높임으로써 단열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그런데 문제는 건축 비용의 상승이다. 건설업자들은 외부 에너지가 필요 없는 1등급 제로 에너지 건축물의 경우 20% 이상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엄살을 떨고 있다. 그러나 제로 에너지 건축은 장기적으로 보면 건축물 유지 비용의 절감은 물론 환경적 가치를 고려한 건축 전략으로 기후 위기 대응과 이에 따른 탄소 중립 요구 속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쾌적한 실내 환경이라는 삶의 질 측면에서 약간의 냉난방으로 만족할 수 있는 ‘제로 에너지 건축물’이나 아예 에너지 사용이 필요 없는 ‘패시브 하우스’는 매력이 있다. 단열이 잘 되어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 사용이 적을수록 실내 온도와 습도 분포가 균일하게 되어 쾌적한 공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제로 에너지 건축물’과 ‘패시브 하우스’는 에너지 사용 감소로 인한 기후 위기 대응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건축 본래의 측면에서 그 당위성을 찾을 수 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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