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야구에는 ‘문김대전’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한화 문동주와 KIA 김도영의 성을 딴 말로, 두 선수의 경쟁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2003년생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KIA의 연고지인 광주 출신이다. 문동주가 광주 진흥고, 김도영이 광주 동성고 출신이다. 그해 투타 최대어 평가를 받은 두 선수를 두고 연고구단인 KIA는 2022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을 누굴 하느냐를 두고 고민했다. 고민 끝에 KIA의 선택은 김도영이었다. 그리고 2020시즌 최하위에 머무르며 전국 단위 지명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한화는 문동주를 1차 지명했다.
이런 스토리 때문에 야구 팬들은 김도영과 문동주의 매 시즌마다 성적을 비교하며 누가 더 우위인지를 평가했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데뷔 시즌을 지나 2년차였던 2023년에는 문동주의 우위였다. 그해 KBO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볼을 뿌리며 화제를 모은 문동주는 8승8패 평균자책점 3.72를 기록하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김도영도 2023년 타율 0.303 7홈런 47타점 25도루로 잠재력을 뽐냈지만, 신인왕을 수상하고 시즌 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멤버까지 된 문동주의 우위라는 평가가 많았다.

3년차였던 지난해 둘의 관계는 180도 역전됐다. 문동주가 7승7패 평균자책점 5.17로 성장세가 퇴보한 반면 김도영은 잠자고 있던 잠재력이 폭발하며 KBO리그를 초토화시켰다. 타율 0.347(3위), 38홈런(2위), 109타점, 143득점(KBO리그 신기록), 40도루, 출루율 0.420(3위), 장타율 0.647(1위), OPS 1.067(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써냈다. 테임즈 이후 KBO리그 역사상 두 번째이자 토종 선수 최초의 40-40클럽 가입에는 실패했지만,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만 21세시즌을 보낸 김도영의 정규리그 MVP 수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3년차 시즌의 격차로 인해 두 선수의 연봉부터 확 벌어졌다. 김도영은 5억원을 받으며 4년차 연봉 신기록을 쓴 반면, 문동주의 연봉은 1억원. 다섯 배 차이가 나게 됐다. 그러나 둘의 4년차인 올 시즌, 문김대전의 양상은 다시 뒤집어졌다. 김도영이 개막전부터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고개를 숙였고, 5월27일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 지난 7일 수비 도중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또 당하고 말았다. 한 시즌 세 번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김도영은 30경기 타율 0.309 7홈런 27타점 3도루를 남기고 시즌아웃됐다.

반면 문동주는 올 시즌 커리어하이를 경신하며 순항하고 있다. 문동주는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 등판했다. 문동주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선두 LG와의 주말 3연전 시작 전만 해도 2위 한화와 승차는 1경기에 불과했지만, 8일 연장 10회 접전 끝에 1-2 끝내기 패배, 9일 선발 엄상백의 1이닝 6실점 참사 끝에 1-8로 패하면서 두 팀의 승차는 3경기로 벌어졌다. 자칫 문동주마저 무너져 스윕패를 당하면 승차가 4경기로 볼어져 다시는 선두 탈환의 꿈을 꾸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문동주는 최고 구속 158km의 직구를 뿌리며 6이닝 동안 5피안타 3볼넷 5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하며 한화의 5-4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달 27일 SSG전 7이닝 2실점, 지난 5일 KT전 7이닝 무실점 호투하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던 문동주는 지난달 22일 두산전 이후 19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9승(3패). 2023시즌의 8승을 넘어선 개인 한 시즌 최다승 신기록이다.
무엇보다 문동주의 호투 덕에 한화는 LG에게 스윕패를 당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동주 역시 팀 승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오늘 정말 중요한 경기였는데 팀이 승리해 기쁘다”며 “특히 오늘은 절대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나의 의지가 잘 드러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문동주의 성적은 18경기 9승3패, 평균자책점 3.12다. 98이닝을 던져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해 평균자책점 부문 순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지금 성적으로 규정이닝을 채울 경우 10위권에 들 수 있는 성적이다.
후반기 들어 문동주의 구위는 한결 더 불을 뿜고 있다. 후반기 성적은 4경기 2승 평균자책점 1.38을 기록 중이다. 문동주는 “팀이 상위권에서 경쟁하니, 나도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이런 경쟁심이 넘치는 상황을 좋아한다”고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문동주를 더 주목받게 하는 건 구속이다. 이날 최고 시속 158㎞의 빠른 공을 던진 문동주는 지난 5일 KT전 6회 이정훈에게 던진 4구째 직구가 스피드건에 160.7km가 찍혔다. 올해 KBO리그 최고 구속이었다. 문동주는 “그날 4회에 이정훈 선배에게 직구(시속 157㎞)를 던져서 중전 안타를맞았다. 그래서 다음 6회에 다시 만났을 때는 더 세게 던졌다”며 “경기 뒤 시속 160.7㎞ 공을 던졌다고 들었을 때, 이정훈 선배에게 6회에 던진 공이 최고 구속을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직 문동주는 구속으로도, 경기 운영으로도 보여줄 게 더 많다. 문동주는 “시속 160.7㎞보다 빠른 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며 “지금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경기 운영에 신경 쓰면 10승을 넘어 더 많은 승리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지난 시즌의 부진을 딛고 문동주는 올 시즌 한층 더 성장했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한화 토종에이스를 넘어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기세를 이어가며 10승 이상을 찍고 2점대 평규자책점까지 기록할 수 있다면, 지난 시즌 확 기울었던 ‘문김대전’의 양상도 다시 수평을 맞출 수 있다. 문동주의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더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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