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 부재… 불법 유통 수두룩
최근 3년 해마다 613건꼴 적발
SNS로 쉽게 구매… 부작용 우려
비싼 값에 팔려 판매자만 이득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고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미프진(Mifegyne)’과 같은 임신중지 약물이 음지에서만 거래되고 있다. 헌재의 판단 이전에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임신중지 약물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불법 판매업자들을 통한 약물 거래가 이뤄지면서 자칫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대표적인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진을 판매한다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판매업자는 “복용법은 다 알려준다”며 “정품이고 택배로 거래도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급하게 미프진을 구한다”며 판매자를 찾는 게시물도 적잖았다.

서울북부지법은 올 6월 엑스에서 미프진을 판매하다 적발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30대 A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미프진 등 임신중지 약물을 20만∼30만원에 판매했는데, 2023년부터 이들 약물을 국내에서 판매하면 큰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인도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를 통해 산 뒤 지난해 9월까지 112회에 걸쳐 택배로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법적으로 약국에서 구할 수 없다 보니 높은 가격에도 임신중지 약물 온라인 거래량은 꾸준하다.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 여성들을 돕는 한 국제 비영리단체를 통하면 약 10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배송받을 수도 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접속차단으로 누리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통관에서 약물 반입이 적발될까 두려워 비싸도 ‘온라인 암시장’을 찾는 것이다.

식약처의 임신중지 약물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 건수는 2022년 606건, 2023년 491건, 2024년 741건으로 최근 3년간 평균 약 612.7건이다.
국가가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이 침해됐다는 진정을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임신중지를 위한 의약품 및 수술을 건강보험에 적용할 것”을, 식약처장에게는 “임신중지 의약품을 도입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할 것”을 각각 권고했다.
같은 해 12월 식약처는 인권위 권고에 “법률이 개정되면 약품 심사를 속개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변했을 뿐 상황은 그대로다. 입법 공백 탓에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불법 약물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지난달 국회에선 임신중지 약물을 합법화하는 모자보건법 일부법률개정안 두 건이 발의됐다.
모두 임신중절수술뿐만 아니라 약물에 의해서도 인공임신중지가 가능하도록 하고 이에 대한 보험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미 2020년 정부는 임신중지 약물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갑론을박 끝에 기한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두 개정안의 입법예고 당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달린 찬성과 반대 의견도 9만9552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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