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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안네 하우스와 이준 열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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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04 22:40:53 수정 : 2025-08-04 22:40:52
박미영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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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들은 어떻게 헤이그까지 갔나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이준 열사 기념관(YI JUN PEACE MUSEUM)은 8월5일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최근 기념관에서 만난 송창주 이준 열사 기념관 관장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머리를 맞은 충격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남편인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과 함께 젊은 시절 네덜란드로 건너간 송 관장은 이준 열사의 첫 추모식을 준비하며 한 기자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당장 답을 하지 못했던 송 관장은 이준 열사와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고, 그것이 기념관 설립의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교사 생활을 했던 그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불이 붙었다”며 “‘KOREA’만 보이면 샅샅이 훑어 자료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박미영 경제부 기자

이준 열사는 1907년 4월 부산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 뒤,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기차를 이용해 두 달여 만에 헤이그에 도달했다. 가는 도중 또 다른 헤이그 특사인 이상설 특사단장과 이위종 통역관도 합류했다. 이들은 전 세계인이 모이는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려 했지만 일제의 방해공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준 열사는 그해 7월14일 ‘드 용 호텔’에서 순국했다.

3층 규모의 기념관은 헤이그 특사의 숙소이자 이준 열사가 순국한 이 호텔 건물에 만들어졌다. 송 관장 부부는 사재를 털어 헤이그시로부터 건물을 매입해 직접 발굴한 헤이그 특사의 자료, 유품으로 채웠다. 기념관 운영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부부가 직접 맡아오고 있다. 외부의 재정 지원은 가급적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생 하나 없이 두 사람이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주 5일 기념관을 지키고 있다.

문을 열고 기념관에 들어서자 송 관장은 직접 이준 열사에 대해 설명하며 곳곳을 안내했다. 독일인 남편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중년의 파독 간호사는 “이렇게 우리나라를 지키려고 애쓰셨던 걸 모르고 이제서야 여기를 와봤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준 열사가 숨을 거둔 방을 재현한 침대에는 태극기와 함께 이곳을 찾았던 이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요즘은 씁쓸한 풍경도 종종 눈에 띈다. 최근 기념관을 찾은 한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는 건물 앞에서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날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를 찾았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유대인 소녀 안네가 은신하며 남긴 일기로 유명해진 장소다. 이곳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건물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6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아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곳으로, 어렵게 취소표를 구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올해 1월에는 이곳을 그대로 옮겨놓은 또 다른 안네 하우스가 미국 뉴욕에 전시되면서 세계인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송 관장은 “이준 열사 기념관도 안네 프랑크 하우스처럼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념관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안네 하우스가 나치의 만행을 기록한 세계적인 역사 교육의 장이 된 것처럼, 이곳도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선 저항을 기억하게 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과 참여, 그리고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박미영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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